[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이유’있는 남편의 변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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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24면

“저는 남편을 위해 안 해본 게 없어요. 제 남편은 변명의 왕이죠.”

미모의 30대 여성 J씨의 절규다. 신혼여행 첫날밤부터 남편은 결혼식과 장거리 비행에 체력이 고갈됐다며 성관계를 피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 첫날밤을 준비했던 순진한 J씨는 남편을 이해했었다.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남편은 “모처럼 외국까지 왔는데 구경이 먼저”라며 관광명소만 돌다가 밤엔 “피곤하다”며 그냥 잠이 들었다.

신혼여행을 마친 남편, 이번엔 미모의 아내를 두고 “허벅지가 굵다”며 불평을 하더니 아내의 속옷이 섹시하지 않다, 향수 냄새가 불편하다, 조명이 너무 밝다는 둥 온갖 핑계로 잠자리를 피했다. 그런 남편에게 섹스리스를 하소연하자 이번엔 “요즘 회사 일로 과로해서 그렇다” “운동 좀 하면 될 것”이라며 무조건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남편은 부부관계 외엔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J씨에게 정말 잘해 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본적인 애정전선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성(性)이 빠진 채 친구나 오누이 같은 부부는 오래가지 못한다.

결혼 3년 동안 J씨 부부가 성행위를 시도한 횟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나마도 삽입은 모두 실패했다. 남편은 자극이 부족하다며 별별 이상한 방법을 원하지만 잠시 발기가 되다가도 삽입만 하려면 남편의 성기는 이내 고개를 숙여버린다. 그런데 남편은 자신의 성 기능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아내의 몸에 무슨 독이라도 묻어 있어서 아내 앞에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아내의 설득에 마지못해 필자를 찾은 J씨의 남편. 사실은 젊은 남성에게 가장 흔한 타입의 발기부전이다. ‘자위 시 멀쩡히 발기되니 발기부전이 아니다’며 강변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발기부전의 한 형태다. 멀쩡한 ‘기계’를 가지고도 삽입성교 시 발기 기능이 오작동하는 게 문제다. 이런 발기부전은 정석대로 치료하면 아주 효과가 좋다. 결국 J씨 부부는 행복을 되찾았다.

처음부터 발기에 문제가 있던 J씨의 남편뿐 아니라 신혼 때는 잘 됐지만 예전과 달리 이런저런 변명이 많아지며 부쩍 서두르는 남편, 잠시라도 발기될 때 잽싸게 삽입하려니 전희조차 없이 덤비는 남편, 심하게 아내 탓만 늘어놓는 남편들은 십중팔구 현재 성 기능에 문제가 있다.

이런 남성들은 곧 그것이 수그러들까 두려워 아내의 흥분 반응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발기는 적절한 이완상태에서 더 잘 되는 것인데, 발기부전 남성들의 서두르는 습관은 이에 역행할 뿐이다.

발기부전에 흔히 발기유발 약제나 주사를 사용하지만, 발기를 인위적으로 시킬 뿐 발기부전 문제 자체를 완치해주는 건 아니다. 발기부전은 혈관·호르몬·신경·심리·부부갈등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기는데, 그 원인을 찾아 교정해야만 완치될 수 있다. 일시적으로 발기를 돕는 약이나 주사에만 의존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숨기고 변명하고 당장 발기시키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치료 시기를 놓친다. 괜한 자존심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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