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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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세기 최고의 미국 작가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히는 토머스 울프의 대표작으로『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란 작품이 있다. 80년대초 우리 작가 이문열(李文烈)이 똑같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그러나 이 제목은 울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17세기 중엽 영국(英國) 시인 존 밀턴에게서 빌려온 것이다.불후의 명시(名詩)로 기록되는『실낙원(失樂園)』에「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란 대목이 나온다.
이 서사시(敍事詩)는 사탄이 천상에서 하느님에게 거역해 지옥으로 쫓겨나는 이야기,그리고 아담과 이브가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이 작품에서의 고향은 천국이나 에덴동산을 의미하며,따라서 천상이나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은 부조리한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의 모습을 가리킨다.결국 우리 인간은 모두 고향을 잃어버린「실향민」이라는게 이 시의 암시적 주제다.
울프나 이문열의 소설도 주제는 같다.
울프의 주인공은 「고향이 이미 황폐할대로 황폐해버려 꿈에서조차 지워졌으므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됐음」을 깨닫고,이문열의 주인공은「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地圖)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향을 꿈속에서,마음속에서조차 퇴색하게 하는 것은 물론 인간 그 자신이다.고향을 고향답게 하는 풍물등 보이는것들을 변하게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의(情誼)라든지 유대(紐帶)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변하 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날이나 추석같은 명절 때 꾸역꾸역 고향에 찾아드는 까닭은 어느 국문학자가 표현한 바 우리에게 있어서의 고향이 아직은「공동체적 정서(情緖)의 도가니」를 가장 진하게 간직한 고장의 이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명절만 되면 의례적으로,또는 인사치레.체면치레를 위해귀향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2천8백만명이 귀향하는「한가위 민족대이동」이라고도 하고,연휴가 시작되기도 전에 20만대의 차량이 서울을 빠져나갔다고도 한■.
교통지옥이 뻔하다고해서 귀향을 나무랄 수 없지만 우리들 삶에있어 과연 고향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새겨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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