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애, 범죄였을까 사랑이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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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13면

연극 ‘블랙버드’
5월 25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평일 오후 8시, 주말·공휴일 오후 3시·6시(월 쉼) 문의 02-766-6007

중년 남자가 어린 소녀와 성관계를 맺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여자는 그 남자를 찾아가 ‘그날’의 전말을 따져 묻는다.
연극 ‘블랙버드’는 아동성애(pedophilia)를 소재로 삼고 있다. 최근 잇따른 어린이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상황이다. 무대에는 시종일관 긴장이 감돈다. 객석도 숨을 죽인다.

12세 소녀 ‘우나’와 40세의 이웃집 남자 ‘레이’는 3개월간 은밀하게 만나다가 외딴 바닷가 마을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나고, 체포된 레이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죄로 6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로부터 15년 후, 새 삶을 살고 있던 레이의 직장으로 스물일곱의 우나가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우나의 등장으로 당황해하는 레이. 우나는 15년 전 레이가 자신을 여관방에 버리고 갔다고 생각하고, 레이는 오해라며 과거의 기억을 다시 맞추려 한다.

이 연극은 스타 배우이자 연극인 조재현이 프로그래머로 나섰고, 추상미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스타들이 이런 민감한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재현은 이것이 ‘지적인’ 연극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추상미는 관람자들이 남자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소녀를 순진한 피해자로 보는 것이 싫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일부러 정직하지 못한 소녀, 의심스러운 소녀, 어른의 욕망을 가진 소녀라는 설정이 부각되도록 연기했다고 했다. 위험한 선택이다.

격렬한 연극의 전후를 합리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감싸는 것은 마케팅의 역할이다. 시작 전 프로그래머의 소개 시간과 커튼콜 후 연출가와의 대화, 그리고 여성 관객에게 꽃을 나눠주는 이벤트가 벌어진다.

야성을 길들이는 문명처럼, 비극을 다독이는 광대처럼, 가볍고 편한 오락물에 익숙해 왔던 관객을 ‘정통 드라마’의 세계로, 혼란스럽고 불편한 진실의 세계로 노련하게 이끈다. 그렇게 ‘블랙버드’는 신뢰에 대해 질문하는 연극이면서 관객에게 신뢰를 주는 연극이 된다. 이수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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