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기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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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19면

선물 스트레스가 가장 큰 때는 크리스마스를 낀 연말도 아니고 추석도 아닌, 오월이 아닐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하나라도 걸리는 날이 있게 마련이다. 조카는 벌써 어린이날에 나에게 받을 선물을 정해둔 터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정해준 것은 차라리 고맙다. 때가 되어 선물을 챙겨야 하면 무엇을 줘야 할지 품목을 정하는 일부터 걱정인 사람을 많이 보았다. 사실, 진짜 그린 라이프를 살려면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 게 정답이겠다. 그러나 선물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재미없겠나.

내가 어릴 적부터 우리 어머니는 ‘남의 집에 처음 갈 때는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된다. 주스 한 병이라도 정성껏 포장해야 한다’고 늘 일렀다. 귀족 놀음을 좋아하는 나는 선물에 대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신봉한다.

나는 큰 야망을 갖거나 뭘 많이 소유하겠노라고 발버둥치는 일은 우습다고 여기는 한편, 작은 격식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꼴같잖게도 ‘몰락한 귀족 정신’을 머릿속 깊이 박고 있다. ‘선물하기’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고, 예쁜 선물은 인생을 값지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생각도 그 한 쪽에 자리하고 있다.

선물이 반드시 즐겁고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 나를 가리켜 ‘생계형 번역가’라고 했다. 달리 돈 들어올 곳 하나 없고 오로지 번역을 하고 이렇게 잡문을 쓰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며 부모의 집 대출 이자까지 떠안고 있으니 ‘생계형’이란 말이 딱 맞다. 그럼에도 부모에게 선물을 할 때는 큰돈을 들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래야만 ‘내 자식이 이럴 만한 형편은 되는구나’라는 안심을 줄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을 생각할 때 선물은 아름답다. 상대를 생각하며 준비한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 건넬 때, 손수 정성껏 싼 마음이 보이는 포장을 풀 때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기쁘고 즐거워진다. 나는 조각 케이크를 담아 주는 종이 박스, 배달받은 상자에 든 에어랩 등을 모아두고 있다.

빵집의 종이 박스는 상호만 가리면 다들 놀라는 번듯한 선물 상자가 된다. 안에는 에어랩을 까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 가지 스탬프를 장만해 두고 재생지 봉투에 스탬프를 찍어 선물 봉투로 쓴다.

지난 연말에는 이렇게 만든 선물 봉투에 수첩을 넣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우리 조카는 내 생일이나 연말이면 직접 그린 카드를 나에게 선물한다. 그게 무엇보다 값지고 고맙다는 이야기를 조카에게 한 번 더 들려주어야 하겠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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