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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피바다에 빠진 추악한 르네상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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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메디치가 살인사건의 재구성
라우로 마르티네스 지음,
김기협 옮김,
푸른역사,
496쪽, 2만원

때는 147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소는 르네상스 문화의 꽃을 피웠던 이탈리아 피렌체. 이 아름다운 도시국가의 비공식 지배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가 대성당을 나서다 암살자들을 만난다. 줄리아노는 목숨을 잃었지만, 로렌초는 위기를 벗어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복수의 요리는 차갑게 먹는 것이 좋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고 했던가. 사건 직후 2년간 이탈리아 반도는 마피아의 복수극을 연상케 하는 배신과 보복의 현장이 된다. ‘이른바 파치 전쟁’이라고 불리는 잔혹 실화다. 여기에는 르네상스 시대 유명 가문과 인물이 줄이어 등장한다. 교황 식스투스 4세와 나폴리 국왕 페란테, 밀라노의 지배자인 스포르차 가문, 그리고 당대 최고의 용병대장인 우르비노 공작과 피렌체에서 메디치의 라이벌이던 파치 가문까지.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을 상대로 한 싸움’이 벌어지면서 르네상스는 피바다에 빠진다. 당시는 근대적인 인권도 사법체계도 없는 시절임을 잊지 말자. 오죽하면 이 책에 ‘시신 훼손과 식인 풍속’이란 장이 따로 있을까.

역사학자 출신인 지은이는 책 앞머리에서 “정치는 비열하고 더러웠지만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 책에선 정치적 음모가 진행될수록 인간의 본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실을 소재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을 탐구했다는 느낌이다.

은행업을 중심으로 교역·해운·보험업에 종사하면서 금력과 권력을 함께 키워온 르네상스 시대 지배 가문이 장사·투자·이익·조세회피, 그리고 정치(또는 권력)를 향한 열정으로 어떻게 뭉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에 대한 사랑이나 가정의 가부장적인 통솔은 주변의 장식적인 요소, 또는 체면치레를 위한 구호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이 책은 인문서와 이야기책을 결합한 퓨전식 서술이 특징이다. 피렌체 시내의 역사적인 현장을 담은 지도,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삶과 인물을 묘사한 당시 그림들이 들어있어 그 당시를 영화로 보는 듯하다. 원제 『April Blood 』.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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