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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우화백 한국산 100곳 화폭에 담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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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구위에 있는 자연의 대표로서,혹은 사람들이 그저 거기에 두고 끊임없이 자기의 인성(人性)을 비춰보는 거울로서 산은 오래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매달려온 소재다.
유영국(劉永國),박고석(朴古石),김영재(金榮裁),김종복(金宗福)씨등은 그런 의미를 담은 산을 그리는 국내작가로서 이미 유명하다. 서양화가 오승우(吳承雨.65)씨는 오는 13일부터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13년만에 개인전 『한국 100산(山)전』을 열면서 새로 산의 화가로 데뷔(?)한다.
오씨는 잘 알려져있는 것처럼 호남화단의 거목이었던 故오지호화백의 큰아들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목우회를 만들어 키우며,또 예술원회원으로활동하면서 자기의 세계를 탄탄하게 가꿔온 작가다.
『한국 100산전』에 소개되는 작품은 그가 10년을 작심하고지난 83년부터 그린 산그림 유화 1백점이다.
대부분 1백호 크기지만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철쭉』같이5백호크기에 담은 초대형작품도 들어있다.
오씨가 소개하는 산그림은 실제 그가 밟고 오르내리면서 그린 작품들이다.
지난 13년간 그가 오른 산은 한라산.설악산.지리산.월악산.
적상산같은 이름난 명산이 대부분이다.그래도 물론 거기에는 그가무시로 찾아 산의 호흡을 자기 것으로 하고 싶어했던 북한산.도봉산.소요산같은 서울근교의 산도 당연히 들어있다 .
오씨는 『내가 그린 산은 유영국선생이나 박고석선생의 산과 다르다』고 한다.그들의 산이 마음속의 산이라면 자신이 그린 산은산속의 산이라는 것.
오씨는 산을 그리기보다는 오히려 힘들여 등산을 한다.계곡과 능선을 따라 걸으면서 그 속에 파묻힌 끝에 정상에 올라서면 그때서야 비로소 산의 실체가 가슴속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산그림은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이 대부분이다.때문에 아래에서 바라본 것같은 우람한 산의 위용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밋밋한 능선과 그 능선밑으로 저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산의 크기와 깊이를 슬며시 말해줄 뿐이다.
이런 작업을 위해 오씨는 국전 최연소 추천작가로 뽑혔을 때부터 트레이드마크가 돼왔던 분방한 터치와 강렬하고 속도감있는 묘사를 아낌없이 버렸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가는 선보다 두꺼운 선을,밝은색보다는 어두운 색을 선택했다.아름답지는 않더라도 흙산이면 흙산인 그대로,바위산이면 바위산 그대로 그렸다.거친 터치와 굵은 선은 영구불변한 산의 장중한 위엄과 묵직한 중량감을 차분히 전하고 있다.
오씨는 이것을 가리켜 오히려 산그림에 적합한 사실주의적 화법이라고 말한다.
이 작업을 맨처음 시작하던 83년 이전까지 오씨는 제대로 이름붙은 산에는 한번도 오르지 않았던 산행에 관한한 문외한이었다. 그런 그가 산을 택한 것은 단지 『작가로서 명예를 걸고 대작을 해보겠다』는 단순한 욕망에서였다고.
이제 10년의 기한을 채우고도 모자라 다시 3년을 더 보태 개인전을 열면서 그는 초지(初志)를 버리고 13년의 세월속에 자신이 만들어낸 산의 철학에 스스로 매료돼있다.
산은 산을 대하는 사람의 인격만큼 가슴을 열어보이며 가르쳐준다는 것.오씨는 산의 가르침을 겸허함,그리고 기다림이라고 했다. 스스로 『이번 개인전이 미흡하다』고 말하는 오씨는 다음 계획보다는 『그저 열심히 그림그리는 길을 걷겠다』고 말한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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