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문화

노래방 속에 숨은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국인은 노래를 참 잘한다. 전 세계 학생들이 모이는 외국 대학 기숙사나 각종 국제대회 모임에서 한국인만큼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프로 뺨치게 부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공식 행사에서는 원래 수줍음을 잘 타는 민족이라 조용히 있는 듯이 보이지만 뒤풀이장에만 가면 폭발적인 에너지와 좌중을 휘어잡는 무대 매너를 선보여 한국의 경제 기적과 성장의 뒷심을 여기서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외국인들도 있을 정도다.

한국인들의 노래 수준이 이렇게 높아지게 된 데엔 '노래방'이란 일등공신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 노래방 때문에 가요 작사.작곡가들 간에 끝없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엔 원로 작사.작곡가 선생님들이 문화관광부를 찾아가 울분에 가득 찬 절규 섞인 항의를 하기도 했다.

현재 노래방 반주기에는 1만여곡의 노래가 수록돼 있다. 지난해 9월까지는 이 반주기에 수록된 노래 한곡에 1점을 그 노래 작사가와 작곡가에게 부여해 누적된 총점수에 따라 노래방으로부터 징수한 저작권료를 분배했다.

그러자 노래방 히트곡을 많이 내는 작사.작곡가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불리는 횟수에 따른 분배가 맞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노래방 반주기 회사가 연주된 노래의 횟수를 자동으로 집계하는 컴퓨터 칩을 개발, 특정 기간 중 어느 노래가 얼마나 불렸는지를 집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문화부는 전국의 노래방에 이 회사 컴퓨터 칩이 3% 이상 장착되면 이를 토대로 저작권료를 분배하라고 시정명령했고, 지난해 10월부터 집계된 통계에 따라 지난달부터 노래방 징수 저작권료를 분배하게 됐다.

그러자 대부분의 작사.작곡가가 반발하고 나섰다. 신 제도의 급작스러운 도입도 문제지만 특정 회사의 반주기에만 장착된 칩의 자료를 기초로 그 분배 비율을 정하는 것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회사의 반주기는 전국 노래방의 6%에만 보급됐을 뿐이다. 또 노래방을 자주 이용하는 연령대의 선호 노래만을 반영하고 특정 반주기가 많이 보급된 지역의 분위기만을 반영할 우려가 크다. 한국 가요의 역사성과 다양한 장르의 발전이란 명분에도 어긋난다. 이러한 이유로 음악저작권협회는 지난달 총회에서 새로운 분배 제도가 아직은 시기상조며 부당하다고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노래 반주기에는 과거에 히트했던 우리 가요사의 주옥 같은 작품들도 수록돼 있다. 그러한 노래들은 세대를 소통시키는 소중한 문화유산이고 이들 노래가 노래방을 찾지 않는 계층들에 의해서도 사랑받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가요시장이 형성된 것은 예전에 사랑받았던 노래들의 축적된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노래의 작사.작곡가들은 과거에 그 공연 횟수에 합당한 저작권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스크린 쿼터로 한국 영화를 보호해 주고,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소수자를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을 인정하듯 우리 가요의 다양한 장르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방식의 강제는 안된다. 새로운 분배방식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형태의 우리 가요 장르를 보호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점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회원들이 총의로 반대하고 우리 가요시장의 특성과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고자 회원들 스스로 유예하자는 방법을 문화부가 꼭 강제해야 하는가.

문화부 저작권과는 단순히 경제적 배분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요가 한국 문화의 한 분야며 이 문화를 살찌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는 정책에 잘못하면 우리 가요는 특정 장르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제작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평생을 가요계에 몸 바쳐 오면서 서민들에게 고단한 삶을 노래로 달래주던 수많은 원로 작사.작곡가의 노력이 사라지고, 그분들의 눈에 피눈물만 맺히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건우 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