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병원촌지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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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기자가 서울대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특실입원 환자 보호자로부터 링게르 주사침이 빠졌다는 야간콜을받고 올라가 주사를 고쳐놓고 나오는데 보호자가 수고했다며 10만원권 수표 한장을 건네려고해 당혹한 적이 있었다.
이번엔 서울대병원에 기관지내시경이 도입된 경위를 살펴보자.
70년대초 폐암을 진단받고 사망한 선경그룹 창업자 故 최종건회장은 당시 서울대병원에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 기관지내시경이없음을 알고 선뜻 두대를 기증했다.이때 도입된 기관지내시경으로숱하게 많은 폐암환자들을 조기진단할 수 있어 환자들의 생명연장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촌지문화 대신 기부문화가 정착돼야 함을 잘 보여주는 일화들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만하다. 오늘날 세계 최고 병원으로 손꼽히고 있는 美볼티모어소재존스 홉킨스병원이 19세기말 위스키로 돈을 번 퀘이커교도 존스홉킨스가 기부한 7백만달러 때문에 탄생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사실. 올해 사망한 故 케네디대통령의 어머니 로스여사 역시 뉴욕소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에 거액을 기부해 신경질환을전문치료하는 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보스턴의 세계적인 암센터 다나파버등 미국내 유명병원중 기부자의 이름을 딴 병원이 유독 많은 것은 기부(Donation)중에서도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데 돈을 쓰는 것을 최대의보시(布施)로 여기는 그들만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꼭 돈만이 아니다.
최근 간이식수술에도 불구하고 간암으로 사망한 양키즈의 강타자미키 맨틀의 경우 죽기 직전 팬들을 중심으로 그의 이름을 딴 장기기증 후원회가 결성돼 맨틀 사후 미국사회에 장기기증 붐이 일고 있으며 에이즈로 사망한 록 허드슨과 폐암으 로 사망한 율브리너등 유명 연예인들은 자신의 질병치료에 기여할 연구비를 모금하고 금연방송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올해도 예외없이 서울.경기등 20여개 종합병원에 대규모의 제약회사 랜딩비가 병원기부금 명목으로 주어졌다는 최근 감사원의 발표는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환자는 촌지 대신 기부를,그리고 의사는 이를 인술로 보답하는분위기가 절실하다 하겠다.
〈洪慧杰.本社의학전문기자.醫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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