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서울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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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4년으로 정도(定都)6백년을 맞은 서울의 중심은 어디일까.
조선조(朝鮮朝)건국이후 한양(漢陽)의 중심부를 형성한 4대문 안,곧 지금의 종로.중구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 가운데서도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으면 정확히 알아맞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대개는 세종로 네거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이곳은 본래 황토마루(黃土峴)라 불리던 고개였고,실제 한복판은 옛 화신(和信)백화점 뒤 인사동(仁 寺洞)194번지 자리다.
이곳은 당초에는 중종(中宗)때 부원군(府院君)이었던 구수영(具壽永)의 집터였다.그뒤 한때 인조(仁祖)가 숨어 살던 연못이라 하여 잠저지(潛邸池)로 불리기도 했고,안동(安東)金씨 문중김흥근(金興根)의 집이 되었다가 그 인연으로 헌 종(憲宗)의 후궁(後宮)인 순화궁(順和宮)으로 자리잡기도 했다.한동안 이완용(李完用)의 집이 되었으나 태화관(泰和館)으로 바뀌어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부른곳으로도 유명하다.
서울의 한복판이 이처럼 파란의 역사를 겪었으니 서울 전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불과 20~30년전까지만 해도 「서울시민」이라 불리는 것 자체가 자랑이었고,특히 종로구나 중구에 살고 있으면 크나큰 자부심을 가질 정도였으나 지금 그 런걸 자랑했다가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인구 1천만명을 넘은지 이미 오래고,서울의 중심이라는 종로.중구의 인구는 갈수록 줄어 도심(都心)공동화(空洞化)현상마저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이 끝난후 1백50만명에 불과했던 서울의 인구가 10년만에 두배이상 늘었을 때 이런 가요가 크게 유행했다.『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낮에는 밭에 나가 길쌈을 매고/밤에는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이란 노래다.그런 노래를 부르면서도 꾸역꾸역 서울로 몰려든 것처럼「싫다」「지겹다」면서도 서울 인구가 나날이 늘어가기만 하는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각종 여론조사의 서울살이 만족도는 70년대 50%대에서 80년대 40%대를 나타내더니,최근 서울시 여론조사에선 30%대로떨어졌다.그때나 이때나 불만의 이유는 공해와 교통 문제다.마침서울의 자동차 등록대수가 2백만대를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 국토를 서울화하는 것 외에 어떤 대책이 있을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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