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재미한인 1.5세대의 슬픈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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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수많은 학생들과 추도객들이 16일 미국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1주년을 맞아 버지니아텍 블랙스버그 캠퍼스에서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총기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에 발표돼 미국에서 주목 받았다. [AP=연합뉴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2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이미지박스,
각 권 530쪽 내외, 각 권 1만3000원

먼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이 소설은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되기 전부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한인 1.5 세대 교포가 쓴 자전적 소설에 미국의 주류 언론, 즉 USA 투데이·뉴스위크·뉴욕타임스 등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마이너러티 문학을 바라보는 미국 문단의 평소 태도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까닭이 있다. 소설이 출간되기 한 달쯤 전,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범인이 마침 한인동포 조승희였다. 한국계 미국인이 어떻게 살고 있기에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수많은 미국인이 궁금해하던 참에 20대 한국계 미국인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소설이 출간된 것이다. 1년 전의 미국 언론은 “요즘 읽기에 적절한 책”이라며 이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그 소설이 번역돼 나왔다. 출간 시점도 마침맞다. 사흘 전이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 1주기였다. 소설은 이미 1년 전에 한국에서도 상세히 소개된 바 있다. 미국 언론의 유난스런 보도 때문이다. 그래도 다시 요약한다. 소설에 관해 여태 알려진 건 미국인의 시각에 오롯이 기대고 있어서다.

소설은 ‘케이시 한’이란 한인 1.5 세대 동포 여성이 미국 주류사회와 한국인 가족 사이에서 겪는 혼란을 섬세한 감각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내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다시 말해 채 미국화가 덜 된 아버지와의 갈등, 한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백인 남자친구 제이와의 심리적 거리, 미국 주류사회가 요구하는 자격을 갖췄지만 막상 그 안으로의 진입은 차단된 케이시 자신의 처지 등이 엉키고 얽히면서 소설은 한인 1.5세대 젊은이의 슬픈 자화상을 완성한다.

작가 이민진(39)씨 역시 한인 1.5 세대다. 어려운 성장시절을 겪었지만 예일대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한 적도 있는, 말하자면 성공한 재미동포다. 소설은 20대 초반 시절 작가 자신의 고민과 방황을 재현했다.

이 소설이 한국에서도 읽혀야 할 이유는 미국에서의 이유와 다를 듯싶다. 우리도 요즘 디아스포라 문학을 주목하는 경향이라지만 이 소설의 사회적 의미는 미국에서 되레 더 유효해 보인다. 대신 꼭 알리고 싶은 건, 소설이 거둔 문학적 완성도다. 번역소설이라 문체까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적었듯이 심리묘사는 섬세하고 치밀하다. 19세기 영국소설이 연상된다. 큰 사건 없어도 시종 긴장을 유지하는 두 권짜리 소설은 드물다. 원제 『Free Food for Millionaires』.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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