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피서지의 음악캠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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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주 짧은 휴가를 용평에서 보냈다.이른 아침 새벽 산책을 끝내고 호텔로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악기 소리가 요란했다.소리를 찾아 가보니 넓은 강당 무대위에 70여명의 젊은이들이 지휘자의 구호에 맞춰 연주회 연습을 하고 있었다.반바 지에 러닝셔츠를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은 채였지만 이미 젊은이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무대위 현수막에는 「제1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지역연주회 및 여름캠프」라고 적혀 있었다.
여름방학이면 뿔뿔이 흩어져 놀러갈 때인데 이들은 이곳까지 와서 저렇게 열심히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구나 하는 감동이 울려왔다. 그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예술학교 성악과 교수인 임웅균(任雄均)독창회가 있었다.무더운 저녁이었지만 그는 정장차림으로무려 12곡의 가곡을 열창했다.선생님의 노래가 끝나면 학생이 나와 마치 옛날의 학예회처럼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학 생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任교수는 강평(講評)을 하고 제자에게 박수를요청했다.3백여 청중이 강당을 빼곡이 메운채 더위를 잊고 이들사제간의 열창에 환호했다.
얼핏보면 초라할 이 작은 연주회에서 왜 쉽게 감동하고 환호했는가.피서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음악캠프가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젊은 음악인들이 이처럼 열심히 제 일을 하고 있다는사실,화려한 무대인들 더위를 핑계대고 마다할 국 제적 테너가수가 오로지 자신의 학생들을 위해 피서지의 간이무대에서 열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감동적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설립된지 2년이 채 안된 병아리 학교다.명문대학 예체능학과 입시부정이 쏟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예술학교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설립됐다.음악원.연극원.영상원이 개설됐고,무용원.미술원이 개원될 예정이다.
실기위주 컨서버터리 형태의 예술학교다.문화체육부가 운영주체인이 학교가 이만큼 성숙했고 문화층 또한 두터워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점이다.기왕에 세운 학교고 저토록 열심인 교수고 학생이라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보다 조직적으로,보다 강하게 해 저들의 저력을개발할 수 있게 힘을 보태줘야 한다.
누구나 쉽게 문화산업이라고 말한다.문화산업이란 개인의 재능과피나는 노력,여기에 강한 후원자의 지원이 있어야만 발전가능하다.이젠 세계적 예술가면서 우리의 문화상품들인 정명훈(鄭明勳)남매들,그리고 조수미(曺秀美)홍혜경(洪惠卿)장영주 (張永宙)등을위해 국가와 기업,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무엇을 해주었는가.탐스런 과일이 열린다음 격찬할 일이 아니다.좋은 결실을 하게끔 거름을 주고 알뜰히 보살피는 배려와 지원이 먼저 있어야 그 과일을 따먹을 자격이 있다.
조수미의 이탈리아 유학시절,그의 친구인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세계적 지휘자 카라얀을 만나기로 되어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카라얀 앞에서 친구는 조수미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했다.「신이내린 소리」라는 카라얀의 격찬은 이런 우연한 기 회로 이뤄졌다고 한다.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해도 하늘이 준 우연한 기회가 없었다면 조수미의 등장은 늦어졌을 것이다.
메트로폴리탄의 프리마돈나가 된 홍혜경이 그의 배역을 감기를 핑계삼아 신영옥(申英玉)에게 넘겨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또 한명의 대가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정명훈 남매들의어머니 이원숙(李元淑)여사의 집요하고도 억척스런 후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그들이 가능했을까.
이제 세계화 시대의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개인의 우연이나한 가족의 후원에만 의존할 때가 아니다.정부와 기업,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들을 지원하고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문화산업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예악(禮樂)이란 인간의 마음을 순화시키며 공동체의 화합과 질서를 이루는 기본이고 촉매다.동양의 이름높은 군주들이 왜 예악을 숭상했고 발전시켰는가.예악이 곧 한나라의 질서와 화합을 이루는 요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 난무하는 무질서와 파괴,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도 음악하는 마음,예술하는 학교와 집단에 대한 과감한지원및 투자가 정부와 기업에서 함께 일어나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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