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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가족오락관' 인기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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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을 관통한 ‘허참의 힘’. 1980년대 정소녀(上)에서 현재 박주아(下)까지 파트너가 숱하게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한자리에 있었다.

흔히들 TV 오락 프로그램이 위기라고 한다. 경박함과 엄숙함의 양끝에서 제자리를 못찾고 있다는 것이다. 한 쪽은 가학적이거나 억지 설정으로 웃음을 쥐어짜고, 다른 한 편은 무리하게 '교훈'을 밀어넣느라 뻣뻣해져 버린다. 오락프로의 수명은 너무도 짧아 시청률이 도와주지 않으면 소리소문없이 편성표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이런 방송 환경에서 KBS '가족 오락관'은 뚝심의 프로그램이라 할 만하다. 10대를 노린 아이돌 스타도, 눈을 홀리는 자극적인 화면도 없건만, 15% 내외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다음달이면 방송 20년을 맞기 때문이다. 6월엔 방송 1000회도 돌파한다. 그 비결을 찾아 가족오락관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장외의 힘

지난 7일 낮 12시 KBS 별관. 두 대의 관광버스가 멈춰섰다.

"여자팀 응원이 돼야 화면에 많이 나올 텐데."(여자팀의 승률이 80%가 넘는다) "난 오늘 시댁 잔치에도 빠졌어."

경기도 평택시 고은별 어린이집과 경기도 포천시 자원봉사 어머니회에서 온 주부 80여명이 쉴새없이 말을 주고 받으며 공개홀로 들어선다. 참가 문의가 밀려 있어 양쪽 다 거의 신청한 지 2년 만에 여의도 땅을 밟았다.

"자, 이모님들 어서 오시고요. 한번 신나게 놀아 보자고요."

이들을 맞은 이는 레크리에이션 강사 박해상씨. 녹화 전 분위기를 띄워 달라는 요구로 잠깐 방송국에 얼굴을 비친 게 계기가 돼 벌써 7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역할은 방청객들의 긴장을 확실하게 풀어주는 것. 가족오락관은 출연자와 방청객이 함께 만드는 프로이기 때문에, 흥이 어우러져야 시청자들도 즐겁다는 게 제작진의 신조다. 박씨의 능수능란한 진행에 주부들의 얼굴이 점점 펴지더니 1시간이 지나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발로 나와 자신의 끼를 내보인다. 이제 준비 완료!

#허참 오락관

녹화 15분 전, 진행자 허참씨가 도착했다. 담배를 한대 빼어 물더니 생각에 잠긴다. 곧 녹화가 시작되건만 긴장하는 빛이 없다. 입가에 미소를 흘릴 정도로 여유롭다.진행자의 필수품인 대본도 없다. 가족오락관은 그의 입과 순발력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허참씨가 아니었으면 현재의 가족오락관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남현주 PD의 말처럼 허참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는 1987년 교통사고로 단 한회 자리를 비운 것을 빼고는 꼬박 20년째 마이크를 잡고 있다. 오유경.정소녀.손미나.김자영.전혜진.장서희.오현정 등 16명의 여성 진행자가 거쳐 가는 동안에도 그는 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기록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1000회는 더 하고 싶다"는 게 허참씨의 소망이므로.

#단순함이 강하다

"우린 시청자들이 피곤하게 이리 꼬고 저리 꼬고 하지 않습니다. 온 가족이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오락의 기능 아닙니까. 단순함과 순진함이 가장 강력하다는 게 제 믿음입니다." 허참씨와 더불어 20년 가까이 가족오락관을 지킨 오경석 작가의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족오락관도 변해 왔다. 방영 초기엔 출연진 대부분이 교수나 변호사 등 유명인사들이었다. 간간이 나온 연예인도 조용필.강수연 등 당대 최고 스타급이었다. 그러다 80년대 후반부터 개그맨.가수 등으로 저변이 확대됐고, 지금은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출연자들이 나온다.

그러나 20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건 오작가가 말한 가족오락관의 정신과 철학이다. 시청률에 영합하거나 제작진이 잘난 체 하지 않고 쉽고 건강한 프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게임이 만들어지고 없어졌지만, 어느 게임도 복잡하지 않다. 정해진 시간 내에 출제자가 설명하는 단어를 맞히는 '스피드 퀴즈'와 귀를 막은 채 소리를 질러 단어를 전달하는 '고요 속의 외침'등의 코너는 이 프로에서 처음 탄생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개그맨 김학래는 "여기 나오면 억지로 짜내려 하지 않아도 우리도 절로 즐거워진다"며 "이 건강한 웃음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로 20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가족오락관의 힘이다.

글=이상복,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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