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음식으로 우주 만찬 뿌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우주에서 우리가 만든 음식으로 만찬을 했다니 너무 뿌듯합니다.”

전북 정읍시 신정동의 방사선과학연구소 식품생명공학팀원들은 13일 새벽(한국시간)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동료들과 한식 파티를 열었다는 소식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잔치에 나온 우리 음식 중 김치·라면·수정과·생식바 등을 이 연구팀이 개발했기 때문이다.

“우주식품은 장기 보존이 가능하면서도 맛·향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인데 한국 전통음식은 발효식품이 많고 수분이 있어 어려웠지요. 이제 첫걸음을 뗐지만 우리 식품기술이 세계 수준이라는 것을 알리게 돼 기뻐요.”

정읍 방사선과학연구소가 우주식품 개발에 나선 것은 2003년. 변명우 소장이 “방사선과 식품공학 기술을 융합한 우주식품은 식품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연구를 제안했다. 이후 석·박사급 연구원 10여 명이 5년 가까이 우주식품 개발에 매달렸다.

당시만 해도 우주식품은 미국·러시아의 전유물이었다. 국내에는 관련 자료가 전무한 데다 선진국은 손톱만 한 정보라도 ‘특급 비밀’로 분류해 철저히 통제했다.

김치를 담아 발효시키고, 방사선을 쐬고, 포장하는 작업을 수백 차례 반복했다. 실험실은 늘 김치냄새가 진동했다. 멸균 상태와 맛의 변화 등을 시간별로 체크하느라 숱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100도 물에서 끓는 라면을 우주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온도(70도)에서 익히는 법을 개발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라면을 삶았다.

특히 무중력을 견디면서 우주까지 음식을 운반할 수 있는 특수 용기와 포장재 개발도 쉽지 않았다. 미·러가 이를 전략물자로 분류해 해외 반출을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릴레이 해외 출장을 다니며 담당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샘플을 얻어냈다. 관련 학자들이 국제학회에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만사를 제쳐놓고 참가해 밤낮으로 따라붙어 정보를 수집했다.

연구팀원인 이주운 박사는 “너무 힘들어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우주인 한 명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07년 7월 세계 세 번째로 방사선을 쐰 우주식품을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전문가들의 미각 테스트에서 김치는 조직이 조금 무르기는 하지만 잘 익었을 때의 맛 그대로이며, 비빔면 형태의 라면은 특유의 매운 맛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술력을 인정받은 이 연구소는 2030년을 목표로 미·러가 추진하는 화성 유인 우주선 착륙 계획(화성 500일 프로젝트)에 공동 참여할 기회를 잡았다. 변 소장은 “화성까지 왕복하는 데 필요한 16개월에 체류 기간 20일 등 총 500일간 보관 가능한 우주음식 개발에 열정을 쏟아 붓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이씨는 13일 오후 서울 목동 SBS에 모인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식 만찬 때 김치와 고추장의 인기가 아주 좋았다”며 “아직 한식이 우주에서 일상적으로 쓰일 수 있는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응이 너무 좋아 귀환할 때 좀 남으면 러시아 우주인들에게 선물할까 한다”고 말했다.

정읍=장대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