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씨 새소설 "천년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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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귀자씨가 옛날 이야기 같은 소설,현실과 비현실.전생(前生)과 현생(現生)이 넘나드는 동아시아의 설화같은 연애소설 『천년의 사랑』(전2권.살림)을 펴내 그의 또다른 변모를 보이고있다. 『천년의 사랑』의 구조는 연애소설의 전형인 삼각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으나 삼각의 한 쪽이 보통사람이 아닌 산에서 기공.
명상등을 통해 도를 닦는 이른바 구도자라는 점에서 그동안의 연애소설과 구별된다.
양씨는 『스스로도 그동안 리얼리즘에 억눌려 있었고 우리의 문학현실도 그런듯해 일종의 문학적 대응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사실주의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아무래도 낯설게 여겨진다. 그러나 양씨는 신비롭거나 환상적인 소재가 현실과 교직돼어떤 궁극의 가치를 찾는 형식이 외국소설에서는 흔히 쓰이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을 굳이 규정하자면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서양과 달리 도교적 신비의세계가 사람들 의식 속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소설 소재로 개발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우리 소설의 지평을 세계화하는 하나의 가능성있는 시도라고도 했다.
「천년의 사랑」이란 글자 그대로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을 영원한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소설에서는 전생에서 헤어진 남녀가 현생에서 다시 만나 진정한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고아원에서 성장하고 전문대학을 나와 유명백화점의 고참직원이 된 스물여섯살의 처녀.과거가 간난 신산의 긴 터널이었던 만큼 힘들여 마련한 16평 아파트는 아늑한 城과 같다.이제 괜찮은 남자만 만나면 그녀의 고단했던 인생도 어느 정도 보상받을 때가왔다.과연 두 남자가 등장한다.한 남자는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나와 장래가 그런대로 촉망받는 인물.둘은 연애에 돌입한다.
그러나 또 한 남자는 사법고시 공부하러 산에 올랐다가 기공이니 명상이니 하는 이른바 도를 닦는 청년이다.그는 산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구애의 편지를 계속 보내며 당신과 나는 전생에서 헤어진 연인임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연애소설의 정석답게 여자는 임신한 상태로 남자로부터 배신당하고 마지막 구원처로 구도자가 머무는 산장을 찾아가 그들의 사랑이 전생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한다.
문학평론가 정재서씨는 이 소설에서 읽어내야 할 중요한 메시지는 『사랑을 찾는 것이 바로 구도 그 자체라는 우주론적 깨달음』이라고 했다.
소설 뒷부분의 무대가 지리산 종주 능선 중에 있는 연하천 산장과 비슷해 놀랍다.소설에서처럼 산장마당에는 무덤이 하나 있다.늘 말없이 오가는 등산객을 맞이하는 젊은 산장 관리인은 무덤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웃기만 한다.소문에는 그 사람의 아내라고한다.산장관리인이 개를 벗삼아 지내는 것까지도 소설 속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해 마치 『천년의 사랑』이 현실화된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들은 양씨는 『작가가 상상력을 발동하기 전에 이미 그러한 현실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모양』이라며 기회 닿는대로 연하천 산장을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李憲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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