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학교서 울려퍼진 ‘환희의 송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첼리스트 장한나씨와 문상초등학교 학생들이 7일 충북 진천군 문상학교 마을도서관 개관식에서 첼로-바이올린 합주를 하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7일 오후 2시 충북 진천군 문백면 문상초등학교 강당. 세계적 첼리스트 장한나(26)씨가 10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독주곡’을 연주했다.

장씨는 이날 이 학교에서 3000권의 도서를 기증한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의 초청에 응해 이 학교를 찾았다. 장씨의 방문 소식에 1학년을 제외한 이 학교 학생 80여 명은 매일 방과 후 바이올린 연습을 했고, 이날 장씨를 위해 ‘숲 속의 음악가’(독일민요) 연주를 선물했다. 장씨의 연주는 정성을 담은 아이들의 연주에 대한 화답이었다.

장씨는 답례 연주 전 아이들에게 “언제 이런 수준급 연주를 연습했느냐”며 격려를 잊지 않았다. 아이들은 세계적 첼리스트의 연주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웠다. 비록 어린 관객들이지만 장씨는 3분여의 연주 동안 열과 성을 다했다. 연주에 몰입한 장씨의 표정 변화에 아이들도 호흡을 같이했다.

첼로 독주를 마친 장씨는 예정에 없이 “언니랑 연주해 볼래”라고 제의했다. 세계적 첼리스트와의 합주를 상상도 못했던 아이들은 환호했다. 합주곡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주먹 쥐고’(동요)와 ‘환희의 송가’(베토벤). 서툰 아이들의 수준에 장씨가 리듬을 맞췄다.

이동엽(13)군은 “누나가 우리 연주를 봐 준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며 “나도 커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연주를 마치고 아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언제부터 첼로를 연주하셨어요.

“만으로 여섯 살 때인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했지. 여러분도 늦지 않았어요. 열심히 연주하면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악기를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해요.

“맞아요. 악기는 ‘사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죠. ‘인연’인 셈이죠. 11세 때 뉴욕의 한 악기점에서 첼로를 처음 만났어요.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어요.”

장씨는 이날 문을 연 ‘문상학교 마을 도서관’에 책을 기증했다. 아이들에게 카프카의 『변신』 등 3권의 책도 권했다. 평소 독서가 취미인 장씨는 “나는 책이라는 밥을 먹고 성장했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장씨는 “책에서는 평소 만날 수 없는 친구와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해맑은 지금의 모습을 10년, 20년 뒤에도 간직하길 바란다”는 말로 시골마을의 작은 음악회를 마무리했다.

글=신진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