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西小門시대마감-대검찰청 월말 서초동으로 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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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법조의 서소문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대검찰청이 이달말 서초구서초동 신청사로 이전하는데 이어 9월말이면 대법원까지 대검신청사 옆에 마련된 새집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
서울중구서소문동38 현재의 대검청사는 73년12월19일 개청돼 지금까지 21년7개월동안 우리나라 검찰의 사령부로서 역할을해왔다. 대검청사가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1911년 현재의 대법원인 대심원▲27년 대법원 건물이 들어섰고▲45년 대법원내에검사국이 설치됐으며▲47년 검사국이 대검으로 분리돼▲73년 현재의 대검청사를 지었던 것.그러나 개청당시 통일시대에 맞춰 세워졌다는 지상 15층.지하2층(연건평 6천3백88평)건물에는 대검을 비롯,서울지검과 고검이 함께 입주했으나 10년이 넘으면서 폭주하는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89년 서울지검과 고검을 서초동 현 건물로 분가시키기에 이르렀다.
개청당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참석,동양 최고의 검찰청건물이라 자랑하고 현관에「國家紀綱의 確立」이라는 휘호를 새겼다.
이 건물에 첫 입주한 검찰총장은 13대 김치열(金致烈)씨.현김도언(金道彦.26대)총장에 이르기까지 14명의 검찰사령관이 거쳐갔다.
국가 사정의 중추로서의 역할도 헤아릴수 없어 李-張사건을 비롯,명성사건.5共비리.영동개발사건.수서택지개발비리가 대검중수부의 철퇴를 맞았다.
또 신정부 이후에는 건국이래 가장 많은 별이 구속됐다는 율곡비리등을 둘러싼 사정수사와 현직 장관으로는 건국이후 첫 구속이라는 이형구(李炯九)노동부장관수사에 이르기까지 수백명의 거물들이 쇠고랑을 차「검찰소환=구속」이라는 신조어를 만 들어내기도 했다. 청사이전 이삿짐은 대한통운 5t트럭 2백50대 분량.25일부터 본격적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29일까지 모든 작업이 완료돼 31일부터 신청사에서 모든 업무가 시작된다.
〈崔熒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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