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왜 다수 국민은 이익집단에게 패배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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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23면

최근 서구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사회과학의 이론적 경향은 무엇인가? 그것은 투표 등 정치·사회적 행동을 계량화하기 쉬운 경제학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행동을 선택한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 이론이라고 부른다. 좌파 이론가들은 현대국가의 재정적자 누적과 복지국가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이 낳은 결과라고 보지만, 합리적 선택 이론은 다른 해석을 제시한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장기적으로 나라야 어찌 되건 자신이나 자신의 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당선에 유리한 선심 정책을 펴고, 대중에게 인기가 없는 세금 부과는 피하다 보니 결국 정부의 지출은 늘고 세금은 줄어 재정적자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 이론에 기초해 이익단체로부터 계급에 이르는 다양한 집단들의 행동을 설명한 책이 맨슈어 올슨의 『집단행동의 논리』이다. 이 책은 정치학을 비롯한 현대사회과학의 합리적 선택 이론의 선구적 저작이라는 점에서 현대의 고전이라 부를 만하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예언과 달리 자본주의사회에서 왜 노동자 혁명이 잘 일어나지 않는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노동자들도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행동 비용과 소득에 대한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한다. 문제는 혁명과 같은 집단행동의 경우 비용이 이득보다 크다는 것이다.

집단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집단행동의 비용이 이득보다 커지기 때문이다. 혁명이 일어나 노동자가 잘사는 세상이 오면 이에 따른 혜택은 혁명에 참여했든지 아니든지 모든 노동자가 받는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이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거나 경찰에 구속되거나 하는 비용은 참여하는 사람만 문다.

따라서 집단이 큰 경우 모두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그 행동이 성공해 혜택이 생기면 이를 받으려고 하는 무임승차자(free rider)가 되려 하기 때문에 집단행동이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집단행동은 혜택이 비용보다 클 때 일어나는데 문제는 혜택을 계산할 때 자신이 집단행동에 참여할 때 그것이 성공해 혜택이 생겨날 확률을 곱해야 한다.

그리고 큰 집단의 경우 자신의 참여 여부가 그 집단행동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확률이 낮기 때문에 혜택보다 비용이 크고, 따라서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고 무임승차자가 될 확률이 크다.

나아가 이 책은 이익집단과 로비의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이 같은 방법론을 이용해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총기 소유가 자유화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러나 총기 판매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려는 노력은 총기 제조회사를 중심으로 한 미국총기협회(ARA)라는 이익단체의 로비로 번번이 실패한다. 이는 무임승차자 때문이다. 총기 소유 자율화에 따른 사고의 피해자인 일반 국민은 그 집단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 대부분 다른 사람이 규제운동을 해주기를 바라는 무임승차자가 된다.

반면 총기 제조업자 등은 소수이기 때문에 거의 무임승차자 문제 없이 똘똘 뭉쳐 총기 규제 반대운동을 함으로써 매번 싸움을 승리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이 지배하는 다수의 지배체제지만 다수는 무임승차자의 원리에 의해 소수 이해당사자와 특수 이익집단에 패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흔히 미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이야기되는 이익집단과 의회의 해당 상임위, 행정부서 간의 공생적인 ‘철의 삼각동맹’이다. 이처럼 이 책은 집단행동 논리를 이용해 현대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위험과 문제점을 잘 분석해내고 있는 뛰어난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