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직무정지] 몸 낮추는 고건 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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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의 15일 일정이 대폭 줄어들었다. 오전 10시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 외에 특별한 일정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전날까지 초(秒)를 쪼개 움직이던 모습과 너무 대비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 나흘 만이다.

이번주 나머지 일정도 권한대행의 의전행사 외엔 총리 시절과 별반 다름없이 짜여 있다. 이런 행보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15일 오전 주식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등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가 진정되고 있어 평상시 업무로 복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부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盧대통령을 의식한 행보라는 것이다. 직무정지 기간 高대행이 눈에 띄게 행동할 경우 대통령의 권위를 침범하는 모습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다는 시각이다.

탄핵 사태 이후 15일 처음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회의 후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이 高대행에게 회의 결과를 보고했다. 高대행은 이날 朴정책실장으로부터 보고받는 자리에서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盧대통령도 파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라"며 예의를 잊지 않았다.

또 高대행은 불가피한 의전행사 외에는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高대행의 철저한 몸낮추기식 행보의 대칭점에는 인터넷과 야당에서의 '고건 띄우기'가 있다. 탄핵 가결 이후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高대행의 국정운영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야당도 국정공백 우려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전술적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高대행을 띄우고 있다. 高대행이 '4당 합의'를 조건으로 다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高대행에게 시정연설을 요청한 것도 야당의 高대행 띄우기의 일환이다. 자칫하면 高대행이 盧대통령에게 발톱을 세우는 모습으로 비칠까봐 우려해 더욱 몸을 낮춘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이 있으면서 권한대행을 맡다 보니 운신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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