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를가다>4.끝 우즈베키스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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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인구 2천3백만명으로 중앙아시아 최대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나라다.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20만명 이상의 한인이 살고 있고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 내외가 서울을방문한 바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는 금세기에 들어선 新도시와 2천년 역사의 舊도시가 병존한다.창문이 길쪽으로 나지 않은 낮은 흑담집들을 지나 구도시의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면 이슬람 종교본부가 있는 쳬리셰이크 사원이 나온다.『러시아 문 명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지금까지 저 상태였을 겁니다.』러시아출신인 택시기사는 舊도시를 지나며 한심하다고 했다.
「내사원에 들어와서 네기도를 하지마라.』쳬리셰이크 사원에서 만난 압둘라파 압둘라 무흐티(최고종교지도자)는 최근 이 지역에서 일고 있는 종교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우즈베키스탄은 舊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5개 공화국중 전통문화가 가장 활발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나라다.이슬람교가 부활되고 러시아 말을 대신해 우즈베크 말이 새로 공용어로 자리잡았다.관공서나 대학에 취직하려면 우즈베크 말을 해야한다.
교육도 우주베크 말로 실시된다.책방과 거리의 신문판매소도 마찬가지였다.지난 3년간 20만명이 넘는 러시아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을 떠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 우즈벡차니 빌라만」(나는 우즈베크 말을 할줄 압니다).
이제 막 현지 말을 배우기 시작한 한인 전그리고리(60)씨.그의 표정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 한숨이 섞여있다.타슈켄트의 한 국교 교감인 그는『말을 몰라 30년간 몸담아온 학교를 떠나야 할 판』이라고 털어놨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에 대신한 국민통합의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타슈켄트 거리를 걷다보면「과거의 영광」을 되살려「위대한 우즈베키스탄」을 건설하자는 구호가 곳곳에 나붙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지도자 카리모프대통령은 공산당 출신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91년 12월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내년 12월 대선에 대비,지난 3월 국민투표를 통해 2000년까지 임기를 연장해 놓았다.또한 재야세력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 국제인권 감시기구의 주목대상이 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민주당(舊공산당)일당 독재아래에 있다.최대 재야세력이던 통일인민전선(비를리크)과 자민당(에르크)은 지도자들이 국외로 추방됨으로써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비를리크는 50만명의 지지세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대부 분 지식인과청년층이라고 한 언론인은 귀띔했다.
경제성장과 정치안정을 빌미로 한 집권연장은 우즈베키스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투르크메니스탄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대통령도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국민투표를 통해 2000년까지 임기를 확보해 놓았■ .민주주의의첨병으로 알려진 아스카르 아카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도 곧 국민투표를 통해 집권연장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를 제외한 舊소련 공화국중 경제적으로 가장 앞선 나라였으나 최근들어 이웃 카자흐스탄에 자리를 물려주고말았다.93년 세계은행(IBRD)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GNP는 8백60달러로 카자흐스탄의 3분의2에 못미치 는 수준이다.
우즈베키스탄은 금과 천연가스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다.특히 白金이라 불리는 면화는 생산량 세계4위로 목화가 국가문장의상징이 되고 있다.
***카자흐와 경쟁관계 주변국들과 영토문제등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특히 카자흐스탄과 경쟁관계에 있다.카자흐스탄이 영토대국임에 반해 우즈베키스탄은 인구 대국이다.
카자흐스탄은 서구지향적인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민족지향적이다.전자(前者)는 러시아와 밀착돼 있으나 우즈베키스탄은 점차 모스크바로부터 멀어지고 있다.양국 지도자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지역질서 마련에 부심하고 있어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중앙아시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속에는 일본 사람들이많았다.최근 일본은 중앙아시아에서 황해에 이르는 가스수송관공사를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중국을 거쳐 한반도해저를 통과하게될 총 연장 6천㎞에 달하는 가스관 건설에 1백20억달러가 투자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비단길에 이은 석유길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751년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가 이끄는 당군은 지금의키르기스스탄에서 아랍군에 참패했다.이로써 이 지역은 이슬람화했고 세계 역사에서 잊혀졌다.21세기의 중동으로 부상하는 중앙아시아.그 역사의 제2장이 한국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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