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콜롬비아 먼저” 한·미FTA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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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다. 원래 미국 정부는 한·미 FTA 비준에 앞서 미·콜롬비아 FTA를 비준하고, 무역조정지원법(TAA)을 개정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미·콜롬비아 FTA 비준이 늦어질 것으로 예상돼 다른 일정도 불투명해졌다. 양국의 정치 상황,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 등도 계속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2일로 타결 1주년을 맞는 한·미 FTA는 비준을 마치지 못한 채 ‘미완의 협정’으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속 타는 정부=통상교섭본부 이혜민 FTA추진단장은 1일 “비준동의안이 18대 국회로 넘어가면 2년여간 해 온 논의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며 “FTA 이행에 필요한 법률 개정에 차질이 발생하면 기업과 국민이 FTA의 혜택을 빨리 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5월 말까지는 17대 국회가 계속되기 때문에 국회에서 처리되기를 기대하고, 정부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는 총선에 매달려 있다. 총선 후에도 ‘정치 새판’을 짜는 과정에서 비준동의안이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총선 이후 잔여임기 중 국회가 열린 적은 전무하다.

◇미국도 곳곳 걸림돌=미국은 11월의 대통령 선거 때문에 의회 회기 종료일을 9월 26일로 앞당겼다. 게다가 8월 2일부터 휴회에 들어간다. 올해 안에 미국 의회에서 FTA 비준을 하려면 비준동의안이 늦어도 5월 초에 의회에 제출돼 8월 1일까지 처리돼야 한다.

미국 정부는 FTA를 체결한 콜롬비아-파나마-한국 순으로 비준동의안을 의회에 상정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에서는 콜롬비아의 노동·환경 기준이 미흡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미·콜롬비아 FTA 비준이 늦춰지는 만큼 한·미 FTA 비준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민주당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TAA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어떠한 FTA도 비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인하대 정인교 교수는 “한국이 먼저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면 미국의 비준을 압박할 수 있고, 혹시 있을지 모를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기대=18~19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면서 “양국 정상이 FTA의 연내 처리 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이를 공표하는 게 미국 의회의 비준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일단 총선이 끝나면 비준동의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는 여론이 조성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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