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논술드림팀 사교육에 도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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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도곡동 은광여고에서 논술을 가르치던 교사들이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학생들이 들고 있는 것은 교사들이 만든 대학별 수시2학기 논술 분석 교재다. 왼쪽부터 김재호·김찬성·조형훈·김정관·장동호, 뒤쪽은 정태영 교사. [사진=최승식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7시 서울 도곡동 은광여고 3학년 교실. 용화여고에서 온 장동호(물리) 교사의 논술 수업이 한창이었다. “물리·수학이 결합된 문제일수록 어떤 이야기가 제시문 속에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해요. 보세요. 빛이 꺾인다는 게 제시문 안에 있죠?”

은광여고 자연계반 3학년생 20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90분간 진행하는 수업에 정의여고 정태영(수학) 교사도 함께했다. 정 교사는 앞서 학생들에게 논술문제 안에 있는 수학 내용(확률과 수열의 귀납법)을 가르쳤다. 정 교사는 “학교에서는 과목 간 구분이 뚜렷해 통합논술을 가르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여러 학교의 훌륭한 교사들과 머리를 맞대니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알찬 학교 교육으로 논술 사교육을 이기려는 교사 10명이 뭉쳤다. 서로 다른 7곳의 고교 교사들이 방과 후 학교에서 두세 명씩 ‘통합 논술 드림팀’을 구성해 공교육 수준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교사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신설동에서 운영하는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연수를 받을 때 만났다.

평소 ‘왜 논술을 사교육에 의존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던 현인철(수도여고·윤리·전교조 대변인) 교사가 앞장섰다.

현 교사는 2006, 2007학년도 대입 논술 기출문제와 풀이 방법을 분석해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학습사이트 꿀맛닷컴(www.kkulmat.com)에 올렸다. 학원 강사가 아닌 현직 교사가 분석한 자료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현 교사는 지난해 10, 12월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다른 교사들과 매일 무료 논술 특강을 했다. 학생 1000여 명이나 몰렸다.

용기를 얻은 현 교사는 방과 후 학교를 통해 학원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김재호(영락고·국어), 이한주(정의여고·수학), 하정호(선유고·사회) 교사를 비롯한 9명이 뜻을 같이했다. 현 교사 같은 고민을 했던 이들로 많게는 20년 이상 교단에 섰다.

김정관(경신고·국어) 교사는 “지난해 한 외국어고가 학원 강사를 불러 고액 논술 강의를 한 건 교사들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며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믿음을 주도록 노력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사교육 이긴다=교사들은 방학 내내 논술 연구에 매달렸다. 밤 늦게까지 논의가 이어졌고 집에 가서도 e-메일로 자료를 교환했다. 주말에도 만나 세미나를 열었다.

그러자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은광여고 3학년 부장 조효완 교사가 “선생님들의 열의가 대단한 것 같다”며 강의를 제안한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달 은광여고에 4개 반을, 봉천동에 있는 인헌고에 2개 반을 열었다. 비용도 저렴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간 첨삭을 받고 6만원을 낸다. 하지만 학원비는 30만~50만원이나 한다. 은광여고 곽현지(17)양은 “50만원이나 하는 학원비에 학원을 포기했는데 여러 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잘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시화(17)양도 “선생님들을 만나고부터 스스로 생각하는 사고력이 부쩍 는 것 같다”고 했다.

교사들은 앞으로도 논술을 집중 연구해 학교 교육의 수준을 높일 계획이다. 정태영 교사는 “대입 제도의 변화로 일부 학원은 돈이 안 된다며 논술 시장을 떠나고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수시에서는 논술이 중요해 학생들의 필요를 공교육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백일현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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