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들으며생각하며>37.북극해 걸어서 횡단성공 허영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허영호(許永浩.41)라는「별종 한국인」이 이다지도 날씬하고 곱살스런 사람인줄 나는 짐작 못했다.얼굴에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검은 고동색 동상 자국이 그를 어쩐 일인지 더욱 양순하게 보이게 한다.이 얼굴 동상은 이번에 다섯명으로 구 성된 그의 일행이 1백일동안 2천2백㎞를 걸어서 평균 기온 영하 30도의북극해를 횡단하는 동안 이 세가지 사람 잡을 자연의 수치로부터얻은 훈장이다(그의 북극해 횡단 일기는 지금 中央日報에 연재중이다).한국 사람은 대체로 산천에 놀기를 좋아한다.옛날에도 그랬다는 기록이 이웃나라 중국의 고서에도 군데군데 나온다.이런 점에서 보면 어떤 한 사람의 한국인이 등산가라는 사실은 오히려수수하다.한국에는 그만큼 산도 많고,등산가도 많다는 것이 상식이다.그러나 한국 사 람은 산천에 다만 놀기를 좋아할 뿐인 것이 보통이다.산천의 극한을 탐험하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허영호씨가 별종인 까닭은 그가 지구의 극한을 탐험하는 세계 정상의 한국 사람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그의 말을 듣는다.
『저는 자꾸 어딘가로 가고 싶어져요.집에 가만히 있으면 좀이쑤셔옵니다.1년에 적어도 여섯달은 밖에서 삽니다.산에 가지 않고 있는 때에도 머릿속에는 훌훌 다니며 인내심과 체력과 궁리를다해 난코스를 헤쳐가고 있는 사이에 말로 할 수 없는 자유를 맛보는 자신을 상상하며 지냅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나갈 탐험을 준비하는 것이 집에 있는 동안 제가 하는 일이지요.목표가 서면 목적지에 관한 자료도 모으고 실제로 다녀온 일이 있는 사람을 만나 경험을 듣습니다.다른 대원과 같이 떠나야 할 곳인 경우에는 후보자를 고르 기도 하고 그 사람과 상의도 합니다.
뭐라고 해도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금을 댈 스폰서를 구하는 것입니다.지금까지는 구하면 다소 빠르고 늦은 차이는 있었습니다만반드시 스폰서가 되실 분이 나타나주셨어요.워낙 다른 준비는 미리 미리 철저하게 해두고 기다리기 때문에 자금 후원자만 나서면한달 안에 실행에 옮기곤 해 왔어요.』 서양 사회에선 생명을 건 모험은 가장 아름다운 가치의 하나로 숭상되어 왔다.모험이란것은 용기라는 이름의 미덕이 생산하는 목숨을 건 시간의 진행이다.사람들은 모험이 펼치는 이야기를 들으며 손에 땀을 쥔다.한모험이 진행되는 전과정 을 끝내고 그 모험가가 살아 돌아오면 그 모험은 성공이다.허영호씨는 자기가 겪은 일의 껍데기 모양은덤썽덤썽 잘 들려준다.그러나 그 내밀은 스스로의 어눌을 가지고단단히 포장하여 둔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이번 북극해 횡단경험에 관해서 물었더니 그가 대답한다.
『우리는 매일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하루에 11시간씩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자명종 시계 같은 것은 가지고 가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시간에 대장인 저는 어김 없이 잠을 깨었습니다.잠자는 동안은 푹 잤고요.
북극해는 난빙(難氷,press ridge)과 개수로(開水路,lead)가 여기 불쑥 저기 불쑥 널려있는 무지 무지 춥고 엄청나게 커다란 빙원(氷原)입니다.난빙이란 건 조수 때문에 생긴불규칙한 얼음 지형이지요.낮은 것은 2~3m,높은 것은 10m나 돼요.우리 대원은 각자 1백80㎏의 짐을 실은 눈썰매를 하나씩 끌어야 했어요.1백일을 먹을 양식.연료.장비가 든 것이었습니다.난빙을 만나면 우리 다섯명이 다 붙어야 그런 썰매 하나를 겨우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러시아의 콤소몰레 섬 북단에서 북극점을 향해 출발한 것이 지난 3월12일이었습니다.그런데 거기서 2백㎞까지는 난빙으로 쫙 깔린 이른바 난빙해역입니다.북극해 원정대들이 대부분 주저앉고 마는 데가 바로 이 해역입니다.
』 1백80㎏이라면 건장한 젊은 사람 셋을 합친 무게다.이 무게를 순전히 한사람의 체력으로만 끌고 5천5백리 눈 덮인 길을4,5층 짜리 집채만한 얼음 덩어리들을 줄창 넘어가며 걷는다는것은 상상조차 어렵다.그들 앞에는 난빙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개수로란 것은 빙원에 생긴 바닷물 도랑이다.허영호씨의 말.
『특히 음력 보름께는 북극해의 바닷물이 순식간에 조석간만 작용에 따라 불어나더군요.그럴 때는 얼음이 갈라지며 바닷물이 드러납니다.넓은 것은 1백m쯤 되기도 했습니다.어느 정도 빨리 이런 도랑이 생기느냐 하면 걸어가고 있는 중에 갑자기 얼음이 갈라지면서 일행 중 어떤 사람은 도랑 이편에 있게 되고 어떤 사람은 저편에 있게 되는 경우를 여러번 경험했습니다.이런 개수로가 불행중 다행으로 남북으로 생긴 것이면 그냥 따라 걸으면 되지만 동서로 생겼을 때는 건너지 않을 수 없었지요.왜냐하면 우리는 북극점까지는 북쪽만을,북극을 지나서는 남쪽만을 향해 걸어야 했으니까요.날씨가 하도 차니까 얼마 안 있어 다시 결빙되죠.책 두께 정도로만 얼면 건너갈 수 있게 됩니다.바닷물 얼음은 고무판처럼 탄력이 있어 잘 깨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런개수로 몇개가 앞길을 가로막는 날은 하룻동안 적어도 20㎞씩은걷기로 되어 있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잘못해서 대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물에 빠져 옷이 젖는 날은 그 자리에서 텐트를 치고 버너에 불을 지펴 젖은 옷을 벗어 말릴 수밖에 없었다.젖은 옷은 순식간에 얼어 명태처럼 빳빳해진다.그것을 입고 걸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금세 몸이 동상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여벌 옷이라곤 하나도 없었다.옷 뿐만 아니라 다른어떤 것도 여벌은 없었다.하나 밖에 안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이들 모험가에게 딱 어울리는 절대절명의 방식이다.짐 무게를 덜자는 일념에서다.칫솔마저 다섯명이 공동으로 쓰기 로 하고 한개만 가지고 갔다.그리고 칫솔질은 닷새에 한번만 하는 것으로 살았다.철저한 규율 생활을 해야 했다.이런 극한 상황에서 규율의해이는 원정의 실패,아니면 그 이상의 재난을 쉽사리 의미하기 때문이다.이를 닦을 때도 許대장이 제일 먼저,그 다음엔 차석 대원,이렇게 엄격하게 순서가 매겨져 있었다.허영호씨의 말이 이어진다. 『그런데 큰 문제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한국에서 만들어 가지고 갔던 유리섬유제 썰매가 난빙대의 얼음 융기(隆起) 오르내리기에 견디지 못하고 하나씩 결딴이 난 것입니다.부서진 부분은 잘라내야 했고 따라서 짐도 일부분씩 버리고 갈 수밖 에없게 되었습니다.썰매의 상처난 부분을 차츰 잘라내 그 썰매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두고 우리는 그랜저가 티코로 되어간다며 쓸쓸해 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그런 감정상의 쓸쓸함을 훨씬 뛰어넘어 심각하기 짝이 없는,직접적 절박성을 지 닌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당초 계획은 어디까지나 중간에 한번도 보급을받는 일없이 북극해를 횡단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대장인 저에 대한 대원들의 불만이 차차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데데한 썰매를 주문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불만의 내용이었지요.할말이 없었습니다.사실 그 썰매들은 원래 물에서는 보트 역할을 하여 사람까지 태우고 삽을 노삼아 저어 건널 수 있도록제작된 것이었습니다.파손 때문에 그 썰매들은 보트 노릇은 커녕물을 만나면 짐을 전부 내리고 조금씩 다시 실어 건너야 했으니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할 수 없이 썰매도 새것으로다시 개비하고,버린 보급품도 보충하기 위해 북극점으로 이것들을실은 비행기를 보내달라고 인공위성을 통한 통신을 보내야 했습니다.』 허영호씨가 이 부분의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뜨끈뜨끈한 감격을 내 명치 끝에서 느꼈다.그들의「무보급」이라는 당초 계획이 중간에,그것도 북극점까지는 그대로 다 가고 북극점에서 보충보급을 받는 것으로 수정되었다는 것은 외부 사람의 눈에 는 이위대한 탐험에 아무 흠집도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은 이것을 엄청난 안타까움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감격케 한 것이다.나는 비로소 극지 탐험이라는 것은 인간 외부의 극한과 인간 내부의 극한이 만나는 지극히 고귀하고 드문「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만남은 지극한 순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리고 이것은 인간「자유」의 극한에 있는 가장 섬세한 부분일 것이다.목숨을 건 극단적 난관과 위험 속에 자신을 짐짓 데려다두고 한편으로는 절 대로 실패해선 안되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다.허영호씨의 말을 듣는다.
『날씨가 좋은 날은 우리는 노래를 불러가며 행진했어요.난빙이없는 코스가 나오고 날씨마저 개면 북극해는 끝 없이 하얀 들판이 됩니다.그럴때 어떤 대원이 「야, 여기에 카페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해 우리는 모두 웃곤 했어요.4월이되니까 해가 지지 않고 낮만 계속되었습니다.꼬박 60일 동안 계속되는 낮을 우리는 이번에 북극해에서 보냈습니다.해는 뜨고 지는 대신 하루에 한바퀴씩 동서남북으로 원을 그리며 빙 돌 뿐이었지요.
위스키를 딱 한병 가지고 간 것이 이번 우리 원정대의 가장 큰 호화로움이었습니다.위도1도를 넘는 날이면 그날 저녁은 병아리 눈물만한 잔으로 한잔씩 했어요.대원들은 이 한잔을 기다려「아,사흘 있으면 또 한 모금 있겠구나」하는 식으로 손가락을 꼽곤 했습니다.위도 1도는 1백11㎞ 거립니다.가장 빨리 1도를넘은 것은 나흘 걸려 넘은 것이었습니다.북극해의 텐트 속에 번지는 위스키 한방울의 향기는 참 굉장한 것이었어요.』 그들은 6월18일에 캐나다 해안에 상륙했다.내가 물었다.낮만 계속되는데다가 산도 들도 없고 그저 흰색 한가지만 있는 수평선 얼음판을 1백일 동안 줄창 걸으면서 음식도 허구헌날 꿀꿀이 죽만 먹었다니 지루해서 죽을 뻔 하지 않았는가라 고.그는 또박또박,이대담에서 처음으로 약간은 싱글거리면서 대답한다.
『아무리 빙원의 연속이라지만 자세히 보면 경치는 순간순간,그리고 한걸음 뗄 때마다 달라집니다.저는 어떤 탐험이나 산행에서도 어떤 조그만 변화라도 놓치지 않고 보아내는데 익숙합니다.그리고 이런 변화라도 놓치지 않고 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뿐 아니지요.다음에 갈 원정 계획을 머릿속에서 짜느라고도 바빴습니다.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은 5년이 걸릴 세계일주입니다.세계의 모든 오지와 험지를 다 가는 것입니다.이번 원정에서 저를 지루하도록 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또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돈 걱정이었다고 한다.계획에 없던 재보급 때문에 경비가 초과된 것을 어떻게 때워 맞추나 하는 걱정이머리를 떠나지 않더라고 했다.그 말을 들으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탐험가 가운데 한 사람이 내 가 사는 일상 속으로 내려와 있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