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인프라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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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어(英語)의 인프라(infra)는 본시 라틴어로「건물 아래」를 뜻한다.지상의 건축물을 땅 밑에서 받쳐주는 기반골격이다.
겉으로 보이진 않지만 건축물을 지탱하는 생명선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도로.교량.터널.항만.발전소등 사회기반시설을「하부구조」(infrastructure)라 일컫는다.더러는 국가의 기초와 근본을 상징하는 말로 원용(援用)되기도 한다.
성수대교 붕괴와 서울 및 대구에서의 도시가스폭발,그리고 이번삼풍백화점 붕괴는 국제사회에 한국의 「인프라 위기」로 비쳐지고있다.경제발전의 속도에 생활의 질(質)과 안전이 희생된「날림성장의 위기」다.붕괴사고 직후 런던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1면 머리를 처참한 붕괴사진으로 채우고 9개월사이 네번째 참사로 한국의 하부구조는 크게 허점을 드러냈다고 전했다.한국의 긍지가「벨트 아래」를 연타당한 꼴이다.
미국(美國)로스앤젤레스 지진도,오클라호마시티 연방정부건물 폭파사건도 이 신문의 1면 머리에 오르지는 못했다.일회성(一回性)이나 돌발성이 아닌,누적적 부실(不實)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6.27 지방선거날 월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한 국기업들의 자가발전적 자축(自祝)광고들이 무색했다.권위주의적 개발도상국 정부들이 국가홍보용으로 해외언론에 내미는 통페이지 광고들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고성장과 기술 약진의「아,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콘크리트 더미에 깔리는 대망신이다. 삼풍참사는 그 자체가 한국사회의 축도(縮圖)로 통한다.유명사치제품과 부유한 소비행태는 고성장 한국의 겉얼굴이다.지은지 6년만에 주저앉은 건물은「바탕의 부재(不在)」를 극적으로 웅변한다.선진국일수록 설계및 준공검사는 땅밑 기초부분 을 까다롭게따지고 지상구조물로 올라갈수록 관대하다.
우리의 경우 눈에 보이는 부분은 번드르르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적당히 넘어간다.정치나 행정.교육.제품제조 할 것 없이 사회 모든 분야가 겉모양새 갖추기에 급급하는「바탕의 위기」다. 인플레는 어느 사회 할 것 없이 공적(公敵) 1호로 꼽힌다. 사회구성원들의 소득을 야금야금 좀먹는 주머니도둑이다.가정에서,직장에서,상가에서,거리에서 시민들의 삶을 무시(無時)로위협하는 「인프라 위기」야말로 인플레보다 더한 우리 사회의 공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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