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좌담>北쌀 타결후 東北亞정세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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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북한간,북한과 일본간의 쌀협상 타결은 남북대화나 북일 수교협상등에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북한은 과연 개방쪽으로 방향을 돌릴 것인가.북한의 변화가 동북아 정세에는 어떤 영향을미칠 것인가.일본의 한반도문제전문가인 쓰카모토 가쓰이치(塚本勝一)평화안전보장연구소 사무국장과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게이오(慶應)大교수의 대담을 마련했다.사회는 전육(全堉)일본총국장이 맡았다.
[편집자註] ▲사회=北-日 쌀교섭에서 나타난 북한의 대외개방의지 또는 외교스타일의 변화를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쓰카모토=우선 북한이 갑자기 한국과 일본에 쌀을 요구한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첫째 실제로 식량사정이 어려우며,둘째 중국의 태도변화 때문입니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은 북한에기꺼이 쌀 원조를 했지요.그러나 올해는 한국과 일본에 쌀을 요청하도록 권했던 것 같아요.세번째는 김정일(金正日)의 권력승계때 북한 국민들에게 선물할 식량이 필요했을 겁니다.이런 관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추적하고 싶습니다.
▲오코노기=북한은 미국과의 콸라룸푸르 핵협의와 이번 쌀협상 과정에서 내부적인 약점을 내보이고 말았습니다.콸라룸푸르협의가 끝나자마자 쌀 이야기를 한국과 일본에 꺼낸 것은 쌀사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입증한 것이죠.북한은 지금 쌀.외화 .석유가 무척 부족한 상태입니다.이런 내부사정이 변화를 모색하게 했을 겁니다. 이 문제와 관련,중국이 왜 갑자기 북한에 식량지원을 중단했는지 잘 살펴봐야 되지 않을까요.제가 보기엔 중국은 최근 北-美관계개선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런 점에서쌀원조 거부는 對북한 견제의 성격이 있죠.
▲쓰카모토=어떤 중국학자는 경수로 제공과 관련된 北-美회담을『미국이 중국으로부터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것』이라고 주장했지요.
▲오코노기=러시아도 미국이 러시아형 경수로를 외면,한국형을 주장함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시키려 했다고생각하고 있습니다.
▲쓰카모토=이번 쌀협상에 나타난 북한의 태도는 내부사정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음을 엿보게 했습니다.북한에는 늘 실무적(개방적)인 그룹과 보수적인 그룹이 대립해왔는데 실무적 그룹은『쌀문제에 체면을 따질 여유가 없다』고 주장했을 겁니다 .실무적 그룹의 힘이 세진 것같은 감을 받았습니다.그래서 보수세력과 가까운 김정일의 영향력이 약화됐을지 모른다는 견해도 있지만….
▲오코노기=최근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말을 자주 사용한 것이 주목되기도 합니다만 아직은 사회주의적인 소유.관리방식만 유지하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도 가능하다는 쪽의 논리인 것 같아요.
▲쓰카모토=지금 북한에는 現김정일체제를 지키는 것이 제1목표란 의견과 경제를 더욱 개방해 먼저 국민을 먹여살려야한다는 방법론상의 이견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코노기=그러나 두 의견은 결국 마찬가지죠.국민을 먹여살리지 못하는 체제는 살아남지 못하니까요.
▲사회=이번 쌀협상을 계기로 北-日 수교교섭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北-日수교 과정을 전망해 주십시오.
▲오코노기=수교 속도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북한은 한국과의 경제교류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원하고 있습니다.북한은외부에서 자본과 기술을 들여와 외화벌이를 위한 수출산업을 육성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그런 점에서 북한쪽이 서두를것입니다.일본도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다만 일본은 참의원선거 뒤의 정국추이에 영향을 받을 겁니다.
▲쓰카모토=난 좀 차가운 전망을 하고 싶습니다.북한은 아마 쌀문제와 北-日수교문제를 별개로 생각할지 모릅니다.쌀을 받았기때문에 수교교섭을 해야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또北-日교섭이 시작되면 핵과 인권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큰 장애가 될 것입니다.
▲오코노기=북한이 韓日기본조약의 유효성 문제를 들고나오고 일본이 이은혜(李恩惠.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선생)문제를 거론하면 수교교섭은 어려울테지요.그렇기 때문에 수교문제는 정치가들이 전면에 나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北-美,北-日수교가 실현돼 한반도의 교차승인이 정착되면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될까요.
▲쓰카모토=그런 구조가 되더라도 북한이 쉽게 개방정책을 취할수 있을까요.북한은 중국식 개방을 바라고 있습니다.사회주의 시장경제입니다.북한당국은 되도록 닫힌 사회는 그대로 둔 채 가능한 범위에서만 개방하려할 것입니다.
▲사회=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김영삼(金泳三)정권이 국면전환의 돌파구로 남북대화에 집착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오코노기=앞으로 총선.대선을 앞두고 金정권이 남북대화를 중시할 가능성이 있지요.나는 남북정상회담이 예상외로 빨리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김정일이 주석에 취임할것으로 예상되는 7~10월 이후가 되겠지요.
▲쓰카모토=나는 당분간 남북정상회담은 힘들다고 봅니다.남한이압도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김일성주석때엔 한국대통령이 평양에 가도 이상할게 없었지만 김정일이 金대통령을 평양으로 부른다면 한국 국민들이 좋게 생각하겠습니까.
▲사회=체면문제군요.
▲쓰카모토=金정권에선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을 더 크게 봅니다.
▲오코노기=김정일이 국가주석에 취임하고 이어 남북 정상회담이실현되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되는 계기가 되지요.그런 메리트는 엄청나게 크죠.
▲사회=김정일이 올 하반기 정식으로 최고지도자가 될 것이 예상됩니다.김정일의 북한은 김일성의 북한과 어떻게 달라질 건가요. ▲쓰카모토=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북한은 지금 김일성 덕분에 살고 있다는 유덕(遺德)정치를 펼치고 있습니다.김정일은 김일성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김일성의 정책을 김정일代에서 바꾸기는 힘들 것입니다.나는 김일성의 스타일로 북한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제1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오코노기=김일성의 유훈(遺訓)은 세가지였습니다.혁명적 경제전략이란 말을 사용한 경제개방과 대미(對美)관계개선,남북관계 개선이었습니다.이 모두 체제수호의 관점에서 나온 전략적 전환입니다. ▲사회=중국과 러시아가 北-美 관계개선 움직임,北-日수교,남북대화 등을 수수방관할까요.
▲쓰카모토=중국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했습니다.미국.일본이 들어오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중국의 지도자가 1세대에서 2세대로 변함에 따라 달라지고 있습니다.덩샤오핑(鄧小平)등 1세대는 북한을 자신들이 만든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장쩌민(江澤民)같은 2세대는 이웃나라로만 생각하죠.심하게 말하면 (북한에)분쟁만 없으면 된다고생각할는지 모릅니다.
▲오코노기=북한은 냉전 이후 한반도의 새로운 안보체제를 미국이 보장하는 평화구도에 맞추고 있어요.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회=북한과 수교하면 한국을 중시했던 종래 일본의 입장에 변화가 없을까요.
▲쓰카모토=일본의 방위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와 홋카이도(北海道).오키나와(沖繩)가 가장 중요합니다.한반도에서는 남쪽이 더 중요하지요.일본의 안전을 생각할 때 韓日관계를 희생해가며 북한과 관계개선을 한다는 것은 본질에 어긋나는 생각입 니다.
▲오코노기=韓日간 마찰은 남북대화가 진전되지않는 상태에서 北-日교섭이 진행되는 것입니다.일본 국내정치 상황에 따라 그럴수도 있어요.그런 일이 없도록 세부적인 문제까지 긴밀히 협의해야합니다. [정리=金國振 東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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