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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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22)죽어서 끌려온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도와 바람 그 사이를 날고 있는 갈매기들은 여전했다.아침이면 산에서 떠올라 저녁이면 핏빛 황혼 속으로 저물어가는 햇빛 속에 섬에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다만 징용 조선인들에 대한 대우만은 더욱 참담하게 악화돼 갔다.
이러다가 목숨 부지할 날이 며칠이나 될까 무섭다는 말이 숨길것 없이 새어나왔다.맞아 죽으나,끌려와서 감옥으로 나가거나,그것이 이 섬에 남아 매일 지하탄광을 오르내려야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를 그들은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하나씩 병들고 죽고 그리고 다쳐서,그렇게 해서 언젠가는 아무도 살아남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사람들은 서로의 앙상하게 깡마른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다만 다 같이 죽게 되어 있는 운명이라면 누가 먼저일 것인가 하는 그 순서에서나마 마 지막까지 자신이 남아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희망과는 달랐다.그런 절망감은 소리없이 느렸지만 그러나 꿈틀거리며 옆사람에게 전염되어 갔다.가래를 끓이면서 심하게 기침을하거나 턱없이 말라가는 사람을 보면서,무언가 수상한 것을 토해내거나 막장에서 올라오면 어질어질 비틀거리는 사 람을 볼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여잡을 수 있는 그것 하나 뿐인 마지막 절망에 더욱 더 매달렸다.마지막까지만 남아 있게 해 달라는 절망이란 이름의 희망에.
시체로 돌아온 일곱명과는 달리 반죽음이 되어 목숨은 부지한 채 잡혀서 온 사람이 둘이었다.그들 또한 태수와 다른 배편으로나가사키로 끌려갔다.
잡혀오지도,시체가 되어 끌려오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징용공들은 그들이 탈출에 성공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저들이 시첼찾지 못했을 뿐 죽어서 고기밥이 되었으리라고 그들은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소곤소곤 목소리를 낮춰가면서 이야기 했다.
『도망치다가는 이꼴이 된다 하고 구경시키려고 그런다는 거 아니겠어.』 배가 와 닿는 부교에 갈매기들이 날아와 앉아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치우지 않고 널브러져 있다는 조선인들의 시체를생각하며 그들은 힘없이 중얼거렸다.징용공들이 묵고 있는 숙사와그곳은 섬의 반대편이었다.
『그러다가 푹석 썩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저러노.왜놈들 차암 모질다,모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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