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주체 모호 개운찮은 뒷맛-南北 쌀합의 문제점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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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 쌀회담이 몇가지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고있다.
순수한 동포애 차원에서 15만t의 쌀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도평양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욕을 얻어먹는 상황이 전개되고있는 것이다.
나웅배(羅雄培)통일 부총리는 21일 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회담 결과를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하기로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22일 현재까지 남북 쌀회담 사실과 합의내용을보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대남비방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관영언론은▲남한 경제 파탄위기 직면▲지방선거 부정협잡 선거 비난등을 잇따라 내보내는 한편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우리가 쌀을 주고 생색내자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북한이 너무 심하게 군다』며 씁쓸해하고 있다.
정부가 남북쌀 회담 합의문 전문(全文)을 공개않는 것도 석연찮은 대목이다.羅부총리가 발표한 문서는 합의문이 아니라 합의문요약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서명 주체가 누구이며 무슨 직함을 사용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이같은 의문과 관련,한 관측통은『쌀회담 합의문 형식을 놓고 난항을 겪은 남북이 합의문을 북한用의「전금철(全今哲)版」과 한국用의「이석채(李錫采)版」을 따로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서는『쌀문제 이외의 문제를 다룬 별도의 이면합의가 있지않겠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남북 쌀회담이 정부가 주장하는대로 남북 당국간 회담인지 여부도 분명치않다.발표문을 살펴보면 이번 합의는 서명 주체가 명기안된 기묘한 형식을 취하고있다.
羅부총리가 공개한 발표 요약문에도 서명 주체에 대해서는「※」표시를 해놓고『본 합의서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자가 서명하였다』고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번 남북 쌀회담은 합의 주체는 없는채 합의 실행을 위해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북한의 삼천리회사만이 명기된아리송한 합의문 요약을 채택하고만 셈이다.
이래가면서 까지 북한에 쌀을 가져다 줘야했느냐는 지적은 북한의 군량미(軍糧米)와 관련해서도 제기된다.전쟁을 치르려면 꼭 필요한 물자가 있다.쌀.석유.탄약이 그것이다.때문에 어느 국가든 이 전쟁비축물자를 확보해놓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한국에 비해 대략 3배나 더 오랫동안 전쟁을 지속적으로 치를 수 있는 전쟁비축물자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쌀의 경우 북한은 5~6개월동안 2천만 북한 주민을 먹일 수 있는 양을 비축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식량폭동 위기까지 겪으면서도 이 쌀은 보존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한국의 전쟁지속능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춘다면적어도 1백20만t은 당장 풀수 있다는 계산이다.그런데 굶으면서도 전시비축용 식량만은 움켜쥐고 있다는 대북정보관계자들의 전언이다. 84년 한국에 수해지원물자를,그것도 겨우 통일미 수준의 5만섬과 천등을 가져오면서 서울까지 트럭에 실어오고 수재민을 직접 만나겠다고 주장했던 북한의 태도가 다시 떠올려진다.
〈金珉奭.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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