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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달거리와 임신가능기간을 피하고 「정확히」 계산해 정한 결혼식날짜였었다.그런데도 하필이면 첫날 밤에 달거리가 찾아들다니….
길례는 망연히 딸을 쳐다봤다.
여자의 지밀(至密)안.
자궁(子宮)이란 온통 감성으로 빚어진 여리디 여린 동굴인가.
육신이면서 통째로 정신인 그 섬세하기 이를데 없는 조직이 새삼놀라웠다.
자궁은 양리(洋梨)를 거꾸로 놓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작은 계란 크기의 근육조직이다.안벽은 점막층(粘膜層)으로 덮여 있는데,두텁게 일궈지는 성질을 지녔다.수정란(受精卵)이 착상하기 쉽도록,또 착상한 수정란에 영양을 보급하기 쉽도록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씨가 뿌리내리기 쉽도록 땅을 일궈 곱게 갈아놓는 농사의 이치와 같다.그래서 모태(母胎)를 대지에 비기는 것인가.
수정란이 착상하지 않는 경우 자궁의 이같은 노력은 무위로 돌아간다.점막층은 밑바탕에서 떨어져 나간다.박리현상(剝離現象)이일어나는 것이다.이것이 달거리다.월경.경도.멘스.스지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러니까 달거리는 임신을 위한 자궁의 노력이 무위로 끝났다는증거다. 그러나 자궁은 체념하지 않는다.묵은 허물을 벗어던지면곧 새로운 일굼을 시작한다.땅은 푹신한 요처럼 갈아 돋워진다.
이 끈질긴 되풀이.
달거리는 실로 회임을 향한 여성의 투지의 상징이다.지치지도 않고 매번 선혈을 되풀이하여 쏟는 모진 생리.그러면서도 그지없이 섬약하여 한가닥 마음의 흔들림으로 변조(變調)를 보이기도 한다. 연옥이 측은했다.모질고도 섬약한 연옥 속의 「여자」가 측은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니?』 『의사답게 잘 처리해 줬어요.』 환하게 웃고 있는 딸에게 더 이상은 물을 수 없었다.묻지 않아도될 것 같았다.기술적 문제에 있어서는 요즘 젊은이들이 훨씬 앞선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길례는 이번 달거리를 건너뛰고 있었다.피곤에 지친 탓일까.
아이 키우기가 벅찼고,결혼식 치러내기도 힘들었다.온몸이 마치구겨진 헌 부대 자루다.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집안에서 웅성거린 때문인지 동해는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간신히 재워 안방으로 건너가 보니 남편이 일본에 전화하고 있었다.
『…동해 외할머님 열쇠가 아니란 말씀이시지요.혹시 가게 분들의 것은 아닐까요? 네,크리스털 알이 달린 열쇱니다.한번 물어봐 주십시오.다시 전화 올리겠습니다.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전화를 끊고 남편은 열쇠를 달력 못에 걸었다.
『동해 할머니댁 열쇠는 아닌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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