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색깔들은 버티고, 엉뚱한 사람만 나가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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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코드 인사’ 퇴진에 앞장선 느낌이다. 그는 일부 대상자의 이름을 공개하며 “끝까지 자리에 연연해 한다면 재임 기간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이에 앞서 그는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며 자진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이러한 유 장관의 주장은 일단 이해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문화예술계 단체의 장이나 임원을 좌파 성향의 인물들이 싹쓸이해 왔기 때문이다. 좌파 정권에 기대어 이념의 도구 노릇을 해온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바른 처신이다. 국민이 새 정권을 선택한 이유는 좌파 이념을 청산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을 통해 이념을 주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관이 반복적이고 노골적으로 사퇴를 압박하는 것은 문제다. 임기제를 도입한 법 정신에 위배된다. 지난해 4월부터 시행 중인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300곳에 이르는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색깔론이 일반적 정서라 해도 법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색깔인사를 퇴출시키는 문제도 법치에 근거해야 한다.

유 장관의 압박은 정작 물러나야 할 코드 인사가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일부 관료 출신을 우선적으로 내모는 부작용을 빚고 있다. 진짜 색깔인사들은 “못 나가겠다”고 버티고 있는 마당에 가장 코드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물러나는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 신현택 서울 예술의전당 사장이 한 예다. 이들은 전 정권에서 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나갈 사람은 버티고 엉뚱한 사람만 먼저 내쫓는 결과만 빚었다.

유 장관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법에 근거해 물갈이를 해야 한다. 경영 실패나 독직·부정 등의 뚜렷한 잘못이 드러나면 해임·파면하는 것이다. 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이고 결정의 정당성은 절차가 올바를 때 인정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