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社 부실채권 털어 배드뱅크서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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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금융회사의 장부상 부실을 털고→시장이 정상을 되찾은 후→부실채권을 한 곳에 모아 집중적으로 처리한다'.

외환위기 직후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이 같은 방식으로 은행의 부실채권을 처리했다.

10일 발표된 신용불량자 대책도 이와 닮은 꼴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배드뱅크를 만든 것이 다르다. 이번 대책의 핵심은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가계부실 채권을 한 곳(배드뱅크)으로 모아 금융사의 부담을 가볍게 한 것이다. 우선 부실채권에 짓눌린 금융사가 한계 상황에 처한 대출자들을 옥죄어서 신용불량자가 더 생기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일단 이런 식으로 고비를 넘긴 뒤 경기가 회복되면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 신불자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한다는 계산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배드뱅크를 외환위기 직후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에게 맡겼다. 취임 초 "서두르지 않겠다"던 李부총리가 한달 만에 서둘러 신용불량자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 문제가 경기회복을 기다릴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1999년 말 199만명이었던 신불자는 지난 1월 376만명까지 늘었다. 李부총리는 "신불자 문제가 가닥을 잡아갈 것이란 (기대)심리가 형성되고 있는 지금이 (대책을 내놓을)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나 두가지 면에서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하나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방조하진 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대책이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금융사간 협약을 통해 추진한다는 것이다. 李부총리는 "신불자에서 벗어나 신분상 불이익이 없어진다 해도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때는 이런 내용이 모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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