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맥나마라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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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CNN의 대담프로인 래리 킹 쇼에 최근 맥나마라 前미국국방장관이 출연했었다.그가 수십년의 침묵을 깨고 베트남전에 관한 「회고-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을 책으로 펴낸데 대한 인터뷰였다.
베트남전의 참혹함과 거기서 처참하게 「살육」된 젊은이들을 이야기하면서 맥나마라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그리고 그는 미국에 대해서뿐 아니라 월남에 대해 저지른 그 엄청난 비극에 전적인 책임을 시인했다.
베트남전은 초기엔 그야말로 「맥나마라의 전쟁」이었다.펜타곤을새로운 경영마인드로 혁신했던 그는 베트남전도 「경영」하려고 했었다.단정하게 기름바른 머리를 갈라 붙이고 지도를 가리키며 베트남전의 승리를 장담하던 그의 모습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주었고 월남에서의 미국의 승리를 확신시켰다.그는 케네디 행정부에서,그리고 이어 존슨행정부에서 베트남전을 수행했다.그러나 그는베트남전의 확전(擴戰)에 반대하다가 마침내 존슨행정부에서 밀려났다.그 이후 그는 근 30년 가 까이 이 문제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왔었다.
그런 그가 책을 쓰고 TV에 나와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마도 그가 공인(公人)의 자리에 있었다는데 대한 마지막 책임과 같은 것 일게다.
그는 월남전의 실패는 미국의 오만함의 과오이며 대통령들의 책임회피의 과오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공산주의 봉쇄정책이라는냉전의 기본틀에 대한 무비판적인 추종이 진흙탕으로 들어가고 있는 전쟁에 대한 재검토를 못하게 만들었으며,전쟁 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대통령들이 월남전의 비극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어느 나라의 행정부도 모두 비슷할 것이다.그래도 자유로운 정책토론이 있다는 미국이 이렇다면 권력의 전제성(專制性)이 더욱 강한 다른 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또 한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그는 월남전이 잘못되어 간다고 생각하고 전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메모를 만들어 존슨대통령에게 제출한다.그러나 그 메모는 묵살되고전쟁은 확대된다.그리고 그는 물러난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지 않았다.그의 대통령에 대한,그리고 공직에서 있었던 일들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헌법에 서약했던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정당했을 것인가.그의「잘못된 진실에 대한충성」이 얼마나 큰 잘못을 낳았는가를 포린 어페어스誌의 다른 평자는 준엄하게 비판하고 있다.이런 점은 5.17,5.18문제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조사도 거부하고 있는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이 깊이 새겨봐야할 대목일 것이다.전직 대통령이 국정과정에 행한 행위에 대해 끝없이 조사받는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며증언이나 조사를 거부하는 그의 논리는 그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역사적 진실의 은폐라는 논점에 대한 회피일 뿐 아니라 잘못된 진실에 대한 충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맥나마라의 정책적 실패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문제일 것이다.60,70년대 미국의 정신을 황폐(荒廢)하게 했었던 월남전의 회오리 속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징집을 피해 유랑하고,항의하고,데모하고,그리고 좌 절했었던 많은 젊은이들의 삶은 어떻게 보상이 되는 것일까.맥나마라는 30년이 흐른후 그의 정책적 잘못을「솔직하게」시인하고 눈물을 흘리면 되지만 그로 인해 죽고,부상하고,정신적으로 불구가 되어버린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한 국 가의 정책적 실패로 인한보상이 그의 참회와 눈물로 충분한 것일까.그들의 고민과 불만을「법과 질서」로만 다스렸던 결과는 무엇인가.
맥나마라의 회고는 어떤 정부든 그들의 정책적 결정이나 집행과정에서 겸허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누구든 그들의 정책집행이 효율적이 되고 그들이 제정한 법이 보편적으로 행해지기를 원하겠지만 그것이 유보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관용성의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맥나마라의 눈물이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정당성과 법집행의 준엄함을 연계하는 여러가지 논리의 근저에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권력의 전제성과 편협성의 함정은 없는지를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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