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떨어지면 생떼 쓰는 공천文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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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 총재단은 요즘 첩보영화 주인공들 같다.총재단은 카폰으로 회합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음 하나씩 호텔방에「잠입」한다.보도진과 수행비서들이 헐레벌떡 쫓아갈 즈음이면 회의는 끝난다.때아닌 추적극의 원인은 단하나다.지방선거를 20여일 앞두고 공천자들을 확정지어야 하는데 낙천자들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총재단은 당초 당사(黨舍)에서 공천심사를 했다.그러나낙천자들이 실력행사를 거듭해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낙천자들은 당사 총재실을 비롯해 요소요소를 점거.농성하는가 하면 집기까지 훼손했다.당사 점거가 관행화되고 있다.이 미 40여명의낙천자들이 자칭 지지자들을 끌고 당사를 다녀갔다.
이「난리」가 보름이상 계속되고 있다.5일에도 광주 某지구당에서 올라온 당원들이 이기택(李基澤)총재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李총재는 결국 동교동行을 20여분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낙천자들은 할말이 많을 것이다.지구당위원장이 정실(情實)공천을 하거나 금품을 받고 공천을 했다는게 이들의 항변요지다.실제중앙당 심사에서 공천이 번복되는 경우도 몇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아무리 옳더라도 폭력과 업무방해는 일반정서와 부합될 수 없다.의사표시는 자유이나 실력행위는 용납되기어려운 것이다.자신들의 주장대로 당의 잘못된 공천을 바로잡고자하는 충정을 가졌다면 더욱 그렇다.정해진 절 차에 따라 이의제기를 하는 것이 더 성숙한 모습인 것이다.
이들이 경선절차를 일단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도 실력행사는 앞뒤가 맞지않는다.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태도로 볼 수 있다.경선은 다수의 뜻으로 후보를 정하자는 것인데 점거농성은 힘으로 다수의 뜻을 꺾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당내에서는 이 들중 상당수가 무소속 출마의 명분을 쌓고자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 지도부의 자세에도 문제는 있다.이의제기가 부당하다면 정면대응을 해야 하고 정당하다면 시정해야 한다.중앙당은 그런 기능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그런데 설득노력이 미흡하다.부당한 이의제기에 노(No)라고 말하는 단호함도 부족 하다.당직자들은『지도부가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고 꼬집는다.민주당 총재단은 좀더 적극적으로 옥석(玉石)을 가려야할것같다.공당의 지도부로서 좀더 책임있는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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