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청와대리포트] 청와대에 간 아버지 부시 MB에 “프렌들리 맨”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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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내외가 12일 청와대 관저에서 식사를 했다. 관저가 한옥인 탓에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고령에다 신발 벗기에 익숙지 않은 부시 전 대통령의 몸이 휘청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축하자 부시 전 대통령이 “프렌들리 맨”이라고 인사했다. 비서관들 사이에선 “우리가 프렌들리 정부일 줄 어떻게 알았지?”란 농담이 돌았다.

이 대통령의 프렌들리(friendly·우호적)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취임 전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친기업)를 외친 그는 13일 노동부 업무보고 때 ‘태생적·본능적 노동자 프렌들리’로 자신을 규정했다. 언론엔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친언론)를 선언한 뒤다.

프렌들리 정부론엔 반론도 있다. 기자들과 청와대 참모 간의 접촉이 쉽지 않은 게 한 사례다. 이 대통령은 그저 “비서관의 말은 곧 대통령의 말”이라고 신중함을 당부했지만, 비서들의 입엔 자물쇠가 걸렸다. 비서실 한쪽엔 “우리는 입이 없다. 우리는 눈이 없다…”로 시작하는 벙어리 맹세문이 나붙었다. 일각에선 Press friendly 정부가 아니라 friendly Press 정부란 주장까지 나돈다. ‘우호적으로(friendly) 언론을 압박(Press)’하는 정부란 뜻이란다.

5년 전엔 386과 코드 인사가 유행어였다. chord(악기의 줄)가 맞느냐, code(기호체계)가 맞느냐를 놓고 논쟁까지 있었던 코드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성향이 맞느냐”는 의미였다. 인사의 제1 원칙이었다. 386 운동권 출신이 초기 청와대 비서관의 절반까지 약진했다.

프렌들리 정부의 인사 기준은 스페셜리스트 기용이다. 이 대통령은 “제너럴리스트는 절대 안 된다. 프로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액션 플랜(action plan)이란 말도 이명박의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청와대 생활수칙이다. 구체적 실천계획을 뜻하는 액션 플랜은 노무현 정부의 로드맵(road map)을 염두에 두고 도입됐다. 노 정부의 정책에 반드시 따라 붙던 로드맵은 ‘장기적 개혁 프로그램’을 뜻했다. 그러나 새 정부에선 공허한 말잔치 정도로 치부된다. 이 대통령은 “추상적 업무계획은 소용없다. 실천 가능한 액션 플랜을 세워라. 날짜와 시간 넣고, 월별·항목별 체크 시스템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최근 청와대 보고서에 ‘로드맵’을 썼다가 “정권 바뀐 줄 모르느냐”고 꾸중 들은 공무원이 단어만 ‘액션 플랜’으로 바꿨다가 “개념이 없다”고 다시 혼쭐이 난 일화가 전 부처로 입소문을 탔다. 프렌들리, 스페셜리스트, 액션 플랜…. 새 정부를 알려면 새 유행어를 익혀야 한다는 말이 청와대에서 나온다.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과 강조점이 담겨 있어서다. 

최상연 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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