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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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런 희경을 어떻게 해보려고 뭇 의대생들이 다가왔지만 희경은코에도 차지 않았다.그런 도도한 희경의 자세에 남자들은 오히려더 매력을 느끼고 환장했다.희경의 미모는 심지어 다른 의대에까지 소문이 퍼졌다.그래서 그들은 가끔씩 손에 손을 잡고 희경의주위를 기웃거렸다.희경이 미스 너스 유니버시티(Miss Nurse University)라나 뭐라나….희경이 이미 살해한 세명의 정신과 의사들도 과거 희경의 매력에 접한 적이 있었다.특히 그들은 정신과 의사가 된 후 정민수의 집들이에서 희경의 요리 솜씨까지 맛본 자들이다.그러니 만나자고 했을 때 냉큼 나왔지.아마 그네들은 나이들어서도 속으로 희경을 탐냈음에 틀림없다.남자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젊었을 때 보았던 여자의 모습을 못잊으니까….
그런 바람둥이들은 죽어도 싸 히히.
희경은 자기를 따라다니는 의대생들을 항상 문전박대했다.그들의대선배나 스승님하고 노는 사모님이 애들하고야 놀 수는 없지 않은가.그러나 정민수는 집요하게 따라다녔다.웬만한 남자들은 자존심 몇번 건드리면 제풀에 다 떨어져 나가는데 정 민수는 달랐다.그는 마치 머리가 없고 심장이 없는 사람 같았다.희경은 쫓아다니는 정민수를 뒤로 하고 계속 의사들을 찾아다녔으나 걸리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마당에 한두번 정민수와 놀아보았다.그런데 웬걸 정민수는 의외로 진국이었다.그는 집안도 좋고 사람도 좋았으며 신체도 좋고 정신도 건강했다.특히 그에게서는 늙은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젊음이 있었다.젊음을 한번 접하자 희경은여기에도 인생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애들이나 가는 디스코테크에 가고 카페에서 히히거리며 서울 근교에 놀러다니는 것이 호텔방에서 뒹구는 것과는 다른 낭만이 있다는 것도 뒤늦게 발견했다.그래서 희경은 아쉽긴 했지만 정민수에게 머무르기로 했다.그도 언젠가는 의사가 될 거라고 자위하면서….정민수에게 머무 르기로 한 첫날밤에 희경은 정민수가 왜 죽자사자 쫓아다녔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물론 자기가 예뻤기 때문이겠지만 그의 집요함은 남달랐기 때문이다.그때 정민수는 한 여성 잡지를보여주었다.그 안에는 희경이 동해안 바닷가를 걷는 모습을 누군가가 찍어 기고한 사진이 독자 최우수상으로 실려 있었다.그 서늘하고 우수에 찬 모습은 희경이 봐도 인상적이었다.정민수는 그사진을 보는 순간 영혼이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며 무조건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희경에게 다짐했다.그후 희경은 정민수에게 정착하면서 방황을 끝냈다.그동안 숱한 경험이 있었기에 더이상 남자들 사이를 방황하진 않았다.그러나 그 남자를 떠나보내고 아이를 지울 때의 고통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아픔이었다.물론 그 고통은 정민수의 아이를 낳으면서 가라앉고 희미해져 갔지만….만일 희경에게 정민수 같은 순수하고 충실한 애인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희경은 계속 지옥 속에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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