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시시각각

대통령을 괴롭힌 핏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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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8년 11월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고 백담사로 은둔했다. 5공 비리 때문인데 대표적인 사건이 동생 경환씨와 얽힌 것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11살 아래인 경환씨를 예뻐하고 끌어줬다. 전씨는 동생을 경호실에 두었고 나중엔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회장을 시켰다. 형제애를 키운 건 가난이었다. 전씨는 사과문에서 “바로 밑 동생이 어린 제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며 어린 시절의 혹독한 가난을 털어놓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가족애는 고문을 먹고 자랐다. 80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는 DJ와 아들 홍일·홍업을 감옥에 넣었다. 홍일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해를 했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형을 선고받고 DJ는 첫 편지를 아내에게 썼다. “고난을 겪은 두 자식이 다 같이 큰 믿음의 발전을 보였으며….” 두 번째 편지는 홍업에게 썼다. “너는 만 30세가 넘도록 아버지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두 번이나 결혼의 길을 잃었으며….”

김영삼(YS) 전 대통령도 차남 현철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들에 대한 세간의 좋지 않은 여론을 측근들이 걱정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측근에게 말하곤 했다. “현철이가 나 때문에 제대로 취직을 못 했다. 그래서 배운 거라곤 정치밖에 없어서….” DJ와 YS의 아들들은 비리로 아버지에게 커다란 부담을 주었다. 나중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고 하여 또 다른 고민을 안겼다. DJ와 YS는 그들을 막지 않았다. 나이 많은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도와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생가를 보면 노씨의 형제애를 이해할 수 있다. 누추한 집, 손바닥만 한 방에서 형제들이 뒹굴면서 자랐다. 그들은 서로의 땀냄새, 발냄새까지 기억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특별한 사회적 지위가 없어 고향에 머물렀다. 그래서 큰 잡음은 없었으나 사건은 있었다. 2004년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은 건평씨에게 자신의 연임을 청탁하며 3000만원을 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라고 말했다. 남씨는 그날 한강에 투신했다. 건평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재판장은 “대통령 친인척이 뽐내고 대접받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므로 겸손·인내로 자중자애하라”고 훈계했다.

가난과 고통의 가족사가 없었던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그러니 그는 가족의 탈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철언 장관이 있었다. 그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사촌동생이다. 박씨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자금 의혹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이명박 대통령도 가족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대통령의 6살 위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어머니는 새벽 행상을 나가기 전 형제들을 깨웠다고 한다. 그러곤 나라·마을·친척·자녀의 순서대로 기도했다고 한다. 지금 그 동생의 그 형이 세인의 시선을 받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지켜본다. 더 젊고 더 선수(選數)가 적은 이들은 탈락했는데 왜 그 사람만 살아남았는지, “이상득의 줄을 잡았다”는 공천판과 관가의 얘기는 무엇인지, 앞으로 그 주변에 권력과 이권을 탐하는 이들이 얼마나 꾈지, 그가 아무리 매무새를 추슬러도 이권의 무리들이 그를 어떻게 휘두를지, 대통령과 형에 관해 얼마나 많은 말이 나올지, 사람들은 보고 있다. 그저 조용히….

김진 논설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