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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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35)어느 새 또 철이 바뀌는가.바라보이는 바닷빛이 전과 다르다.허긴,겨울이 간게 언젠데.봄이야 오는가 싶다가,꽃 지고 나면 지나가는 거지.
고향 땅에도 봄은 왔다가 가 버렸으리라.절기는 속이지를 못하는 거니까.나라 잃은 땅에도 봄이야 찾아오는 거니까.그나저나 제삿날이나마 잊지 않고 챙기는가 모르겠다.살고 못 살고가 문제가 아니지.사람도리라는 게 있는 거 아닌가.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와서 명국은 바다를 내다보고 있던 고개를 돌렸다.시도 때도 모르게… 가는 건 야속한 세월이로구나.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목발을 집어들며 명국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정씨가 무언가를 우물거리며 다가왔다.저것도 천성이라면 천성이지.나잇살이나 든 사람이 뭘 저렇게 입에 달고 사나 모르지. 그런 사람이 정씨라고 부르면 화는 잘도 낸다니까.무슨 큰벼슬이라고 개명한 일본이름을 불러줘야 좋아하니 그것도 모를 일이지.사람은 저마다라더니 저 사람을 두고 한 소리 같다니까.
멀리 화장터가 있는 섬에서 연기가 올라가는가.뿌옇게 안개가 낀 바다 저편으로 가물거리는 것이 보인다.명국의 눈길이 거기 가 꽂힌다.
죽은 놈만 억울한 거지.누굴 탓하겠는가.천천히 걸음을 옮겨 명국은 병실로 돌아왔다.
화순이,너도 이제 가는구나.죽어서 가는 길에 무슨 한이며 원망 따위가 남을 게 있겠냐.훨훨 그렇게 날듯이 가거라.가서 저세상 만나거든 거기서나 못 다한 생각,옥양목 널듯 펼치고 살거라. 섬 쪽에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차마 이 눈으로야 어찌 보겠는가.그런 생각을 하면서 명국은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일곱 명의 조선 사람이 죽어 돌아왔다고 했다.일곱이라니.그런 떼죽음이 또 있겠는가.제 명으로 못 죽은 것만도 억울하기가 짝이 없는데,만리 남의 땅에서 그 몹쓸 고생들을 해야 했던 것도 생각하면 눈을 못감을 일인데,게다가 그렇게 죽 기까지 하다니.
그나저나 큰 일은 그것만도 아니다.잡혀간 사람들이 어찌 되려는지,노무계 쪽에서는 이번에 뿌리를 뽑겠다고 벼른다지 않던가.
태수가 일을 벌였다고는 하지만 어디 태수 하나로 끝낼 성질의 일이 아니니,얼마나 다른 사람들이 또 잡혀가서 고 초를 받아야할지.그것도 모를 일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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