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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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새들은 돌아오지 않았다(32)『끌어올린 시체가 전부 일곱이랍니다.』 『아니,저럴 수가.그렇게나 많이….
』 『그렇지만 겉만 볼 게 아니라 뒤집어서 속도 봐야지요.죽은사람은 그렇지만 나머지는 결국 살아서 도망을 쳤다 그런 얘기 아닙니까.』 이 사람은 지금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이렇게 입에 거품을 무나.명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낙반사고로 다리를 다쳐 목발을 한 정씨와 함께 두 사람은 나란히 나무의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자신이 목발을 짚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똑같이 목발을 짚은 사람이 쩔룩거리며 다니는 것이 남보기에도 민망해서 명국은 되도 록 정씨와 같이 있기를 피해 왔었다.그러나 요즈음 며칠은 달랐다.번잡스럽게 이일 저일에 끼어들기 잘하는 정씨가 일본사람들을 통해 여러가지 소식을 물어와 명국에게 알려주곤 했기 때문에 아침 이 시간이면 밖에 나와 둘은 목발을 옆에 놓 고 나란히 앉아 있곤 했다.징용공들의 농성이며,그들이 화순이의 시체를 요구하며 사무실 앞까지 쳐들어왔었다던 이야기를 명국은 그렇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비가 개고난 하늘이 한결 해맑았다.땅에서는 사람들이 피가 터지며 죽어가는데,저놈의 하늘은 그날이 그날,무심하기로 하자면 무엇을 저기다 댈까.
『그래도 반 이상이 도망을 쳤다고 하던데요.』 『누가?』 사토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 정씨가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말했다.
『아니,이 사토를 못 믿어서 그러세요.전 틀린 말은 안하는 사람이에요.』 『반이라면,몇이나 도망을 갔다는 말인가?』 『그거야 아직은 모르지요.대략 들리는 얘기로는 스물에서 서른은 되지 않겠느냐던데요.』 명국은 마음 속으로 놀란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탈출을 했다면 몇 사람이 죽어서 돌아오는 게문제가 아니다.탄광 쪽에서 보자면 눈이 뒤집히게 큰 일이 아닌가.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면서 명국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그러면? 한쪽에서 도망치는 걸 도우려고,그걸 속이기 위해 조선사람들이 왜놈들과 싸웠다는 얘긴가.화순이를 핑계로 사무실에다대고 돌팔매질까지 했다는 건가.누가 꾸민 일인데 그렇게까지 생각이 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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