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칼럼>일본닮기 이젠 끝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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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우리는 현해탄을 건너 들려오는 일본의 신음소리를 매일같이 듣고 있다.요즘 일본의 국가적 곤경과 일본 국민들의 깊은 좌절감을 접하노라면 국부(國富)라는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경제발전이 과연 절대선(絶對善)인가 하는 근본적 인 회의에까지빠져들게 된다.
아직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절대빈곤 수준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나라 전체로 보아서도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처지에서 이런 회의는 사치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오늘이 바로 20년후 혹은 30년후 우리의 얼굴이라면 문제는 다를 것이다.
요즘 일본 국민들 가운데는 아예 해외 이주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경제대국이라 하지만 나라만 부자이지 정작 국민들은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며 토끼장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나마의 경제성장도 엔高등으로 주춤거려 일본의 시계는 이제한 낮을 지나 2시다,3시다,심지어 4시라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경제난국뿐인가.
정신적 혼란도 심화돼 오움진리교사건과 같은 극단적 현상도 불거지고 있는데 정치권은 스스로 혼돈에 빠져 국민들에게 아무런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해외이주는 이런 일본의 경제적 현실.정치상황.사회상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서 비롯된 도피성 이주라는 것이다.
이건 확실히 우리가 꿈꾸는 미래상은 아니다.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는 이런 일본의 방황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아직도 일본을 모방하고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다는 사실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일본을 닮아도 너무 닮았다.법과 제도에서경제발전전략에 이르기까지 행정과 경제가 일본을 쏙 빼 닮았다.
문화민족이란 자부심만 강하지 서구문화를 도입해도 으레 일본이일단 도입해 일본화 해놓은 서구문화만 들여오고 있다.닮고 닮다못해 허점과 치부마저도 베낀듯 닮았다.
일본의 물가가 높다하지만 우리 물가도 그에 버금가지 않은가.
오움진리교사건이 남의 일같지만 우리도 오대양사건.종말론 사건등을 경험했지 않은가.이런 식으로 닭은 꼴을 양산(量産)하다가는 일본의 오늘이 바로 우리의 내일이 된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쯤에서 일본 닮기를 끝내야 한다.그리고 일본의 위기를 거울삼아 국제적 마찰을 피하면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質)을 높여 국민적 에너지를 계속 결집할 수 있게 할 새로운 경제성장전략.국가경영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
일본을 모델로 한 성장은 이제까지로 충분하다.물론 경제구조부터가 일본을 닮아 있는 판에 우리 나름의 발전모델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혁명에 가까운 작업이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는 더 늦기전에 그것을 시작해야 한다.
그럼 그것을 누가 할 것인가.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지도층이 그 중심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일본이국가전체로는 세계 제1의 경제강국이 되었으면서도 오늘날과 같은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정치지도층이 확고한 국 가경영전략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는게 중론이다.
우리라고 해서 다를바는 없을 것이다.우리들이 20년,30년후일본과 같은 국부를 축적할는지도 장담할순 없는 일이긴 하나 설사 그때 현재의 일본만한 수준이 될 수 있다해도 그 결과가 오늘의 일본과 같아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피해야 마 땅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권은 일본의 위기를 마치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당장 정부부터도 일본의 위기에서 아무런 교훈도 느끼는 기미가 없다.
경제개발도,행정도 그저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일본 닮기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의 정치지도층은 국가경영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데 대한 따끔한 책임으로 회초리를 맞고 있다.
아직도 새 전략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나 적어도 그 필요성은절감하고 있다.그러나 우리의 지도층은 어떤가.눈앞의 지자체선거에는 관심이 있어도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서는 위기인지 조차 모르는 눈뜬 장님들일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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