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존경받는 부모가 되는게 진짜 "잘 사는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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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자 보금자리로서의 가정,그 구성원으로서의 가족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소년.소녀들이 모여사는 고아원과 유사한 「소년의 집」이 있다.
어느날 원생들이 수녀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서오릉으로 소풍을갔다. 다음날 한 소녀가 종일 울면서 슬퍼했다.
어렵사리 들려준 사연인즉 「소년의 집」에 딸을 맡기고 떠난 아버지가 달아준 머리핀을 소풍길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전 원생과 수녀님들이 발벗고 나서 그 아버지의 「정표」를 찾고 또 찾았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약속대로 자기를 데리러 올 때 혹시 변한 얼굴을 못알아보더라도 그 핀을 보면 알수 있으리라 믿고 한시도 놓치지 않고 몸에 지니고 다녔던 생명같은 증표였다.
그날 따라 언제나 그랬듯이 원생들이 놀다간 자리를 말끔히 치운 미화원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소녀의 수심은 그때부터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집나간 자식들을 찾지 않는 부모가 늘고 있다고 한다.
찾아와 봐야 또 나갈 것이 뻔한데 왜 찾느냐는 변이다.
부산의 몇몇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4명중 한학생꼴로(23%)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통계도 보았다.
보고 배울 것이 없는 기성세대,자식들의 눈에 비친 부모상은 과연 어떠했을까.
근년들어 잇따라 터지는 각종 부실공사,비리와 부정,향락퇴폐,그리고 학교의 돈봉투 등.
이런 기성세대 부모들이 옆에 있는데 부모를 믿고 존경할 마음이 어린 학생들에게 나오길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뛰고 있는 사람들,저마다 잘 살아보겠다고 애쓰고 있는 숭고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폄하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그렇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아 가난을 면했다고 행복한가. 가족간의 사랑과 신뢰를 희생하면서 얻은 「먹고 살만한 자리」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잘 사는 길인가 하는 물음은 어려운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다만 자녀들에게 장차 어떤 사람이 되라고 바라는 만큼만 부모자신이 본보기가 되는 삶,그런 삶이 「잘 사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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