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650여 명 북적 “27명 당선은 무난” 비례대표 경쟁률 1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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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 후보자 접수 마지막 날인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공천 신청자들이 서류 접수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10년 만의 보수 정권 재탄생이 ‘엘리트 정치 예비군’들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교수·변호사·의사·약사·군인·당직자 등 다양한 전문직 엘리트들이 한나라당 비례대표 신청에 몰린 것이다. 당 안팎에선 “한나라당 창당 이래 최대의 ‘정치 인력 시장’이 섰다”는 얘기가 나온다.

11일 4·9 총선 한나라당 비례대표 신청자는 650여 명에 이르렀다. 17대 때의 150여 명에 비하면 4배가 훌쩍 넘는 숫자다. 이번 총선의 비례대표 정원은 모두 54명. 현재 한나라당 지지율이 5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당선 안정권은 27명 선이다. 따라서 드러난 경쟁률은 12대 1이지만 당선권 실질 경쟁률은 24대 1을 넘어선다. 지난달 마감한 지역구 공천의 경쟁률도 창당 이래 최고인 4.8대 1을 기록했었다. 가히 ‘한나라당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비례대표 신청자의 경우 심사비 30만원과 6개월치 당비 180만원 등 210만원씩 내게 돼 있어 한나라당은 15억여원의 부수입도 올리게 됐다.

이처럼 한나라당 비례대표 신청에 기록적인 숫자가 몰린 이유는 뭘까.

당 관계자들은 먼저 “지난 10년간 진보 정권하에서 정치 진출의 기회를 포착하지 못해 움츠리고 있던 보수 엘리트들이 보수 재집권을 계기로 한꺼번에 움직인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한나라당이 두 번이나 정권 창출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가지지 못했던 ‘보수 정치 예비군’들이 10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맞아 쇄도한 것”이라며 “그만큼 잠재해 있던 보수 인력 풀들이 많았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분석했다.

비례대표 신청자의 비율이 지역구 신청자를 크게 넘어선 것에 대해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이들에게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가 부담이 덜해서일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진보 정권 아래서 예비 정치인에게 가해지던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다소 누그러진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이번에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사람들 상당수는 기득권층”이라며 “이 대통령의 등장으로 도덕성이나 재산 면에서 좀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이들의 참여를 독려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한나라당이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도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자칫 장관 인사 파동에 이어 또 다른 ‘기득권 중심 정당’ 이미지를 심어줄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비례대표 신청에는 지난해 경선과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을 한 각종 직능단체 대표도 상당수 있다. 이용득 한국노총 전 위원장, 원희목 대한약사협회장 등이다. 이들의 행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조직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입신과 영달을 위해 지지선언을 했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팀장은 “선진국으로 갈수록 직능단체 대표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예가 많아지긴 하지만 지지 선언을 한 단체의 대표들이 줄줄이 비례대표 신청을 한다면 지지 선언의 순수성과 이들 간의 부적절한 커넥션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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