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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르포] “남편 월급 빼곤 몽땅 올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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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물가가 오르면서 중국인들의 장바구니가 가벼워지고 있다. 10일 중국 베이징의 한 시장에서 채소를 든 남자가 지나가고 있다. 중국의 2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8.7% 올랐다. [베이징 AP=연합뉴스]

중국의 2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1997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다. 물가는 이미 중국 경제의 최고 골칫거리가 됐다. 돼지고기 등 생활 물가가 많이 뛰면서 서민 경제에 주름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물가 급등은 전 세계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

10일 저녁 베이징(北京) 왕징(望京)의 화롄(華聯)백화점 식품 코너. 돼지고기를 사러 온 주부 왕씨(50)는 비닐 포장된 고기를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했다. 한동안 주저하던 왕씨는 마침내 첸시허(千喜鶴)란 회사가 생산한 유기농 돼지 삼겹살을 집어 들었다. 1㎏에 39위안(약 4680원). 돼지고기는 중국 정부의 물가 통계에서도 1년 전보다 무려 63%가 올라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혔다. 왕씨는 “지난해부터 무섭게 올라 선뜻 사기가 어렵다”며 “식탁에 돼지고기를 안 올릴 수도 없어 마지못해 샀다”고 푸념했다. 5㎏짜리 콩기름은 지난해 말 60위안에서 100위안으로 뛰었다.

인근 유제품 코너에서 우유를 고르던 30대 주부 리씨는 “성장기 아이에게 우유를 먹여야 하는데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녀는 “남편의 수입은 거의 안 올랐는데 물가만 끝없이 올라 생활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유제품 코너의 여성 판매원은 “지난해까지 정부 눈치를 보던 우유 제조업체들이 올해 들어 경쟁적으로 가격을 올렸다”며 “최고 두 배로 올린 곳도 있다”고 말했다.

마침 유제품 코너의 광고판에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 남자 110m 허들 종목의 금메달 후보 류샹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한 쇼핑객은 “요즘 시중에 물가와 올림픽을 풍자한 우스개가 있다”며 “일반인들이 달리기로는 류상을 따라잡기 어렵지만, 서민들이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따라잡는 것은 더 불가능하다는 얘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제 웬만한 중국 서민들도 CPI가 무슨 뜻인지 알 정도”라고 덧붙였다.

30대 맞벌이 여성인 궈씨(33)는 “아파트 월세가 1년 새 40%가량 올랐다”며 “베이징에 집 가진 사람들 좋은 일만 시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그려진 100위안짜리 최고액권 한 장을 꺼내 보이며 “요즘엔 마오 주석께서 서민들 지갑 속에서 너무 쉽게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 불안에 대처할 수단이 마땅찮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고민이다. 중남부 지역의 폭설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데다 미국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고삐를 조였다간 자칫 올해 중국 경제도 경착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물가 당국의 고민이 깊어가는 가운데 중국 인민은행이 당장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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