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韓.日 양국의 제도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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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가 불신받고 정당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은 한국과 일본이 다를바 없다.문제의 원인을 제도 탓으로 돌려 해법(解法)을 구하고 있는 현상도 비슷하다.
지금 양국에서는 현실정치의 돌파구로 정반대의 제도변경 주장이쟁점화되고 있다.내각제 개헌과 총리(내각총리대신)공선제(公選制)-.한쪽에서는 대통령 1인이 임기중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있는 정치체제를 구조적으로 바꾸자는 것이고,다 른 한쪽에서는 국민이 임기제총리를 직접 뽑아 대통령에 준하는 힘을 실어주자는것이다. 두 쟁점이 각기 다른 정치문화.배경으로부터 나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한국은 오랜 권위주의 정치문화속에「민주화」를 대립축으로 정치발전을 모색해왔다.반면 일본은 이(利)를 앞세운분권(分權)과 담합의 정치를 체질화해 왔다.
그러나 운영의 묘를 부정할 만큼 완벽한 제도는 없다.제도의 허점은 곧잘 남의 떡이 커보이게 한다.물론 자세히 보면 한일(韓日)양측 주장의 동기엔 적지않은 차이가 있다.한국의 수차에 걸친 내각제개헌 주장은 지도자의 사적(私的)동기가 일반론으로 치장된 것이 대부분이다.이번 역시 주창자.동조자의 면면이나 정치적 입지로 보아 개인적 돌파구 찾기로 보일 소지가 많다.
이에 비해 일본의 총리공선제는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국민들에게 내각제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자민(自民).신진(新進)黨등 정파를 초월해 소장그룹들간에활발히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고,무당파층을 겨냥한 정치야심가들의적극적 호응을 받고 있다.한마디로 현행 내각제로는 전후(戰後)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들은 자민당 1당지배(38년간)이후의 연립정권 행태와 무라야마(村山)총리의 무능을 논거로 제시한다.
『있으나마나한 공백(空白)정권보다는 차라리 당장 국회을 해산하는 편이 낫다』(나가노 日經連회장),『평생 야당만 해와 책임감.결단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사람』(하세가와 게이타로 평론가),『지진에도,오움에도,엔高에도 뒷짐지고 놀라기 만 하는 미이라정권』(월스트리트저널)….
여기에 현행 헌법.내각법으로는 누가 총리가 돼도 별 수 없을것이라는 게 총리공선제론의 핵심논거다.헌법(72조)엔 내각총리대신이 행정각부를 지휘.감독하게 되어있지만 내각법은 각의를 최고의사결정기관으로 규정,총리는 회의를 주재하는 권한밖에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헌법사항인 공선제를 제도화하는데는 캄캄한 터널을 수없이 지나야한다.우선 공선제개헌을 헌법9조(자위대문제)등아무 진전없이 수십년 계속돼온 개헌.호헌논쟁으로부터 떼어내 추진하기가 어렵다.그래서 추진의원들간에는 편법으로 헌법조 항을 그냥 두고 내각법을 고쳐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면 되지 않느냐,참의원 전국구 1번에 각당의 총리후보를 공천,일정임기의 총리직을 보장해주면 되지 않느냐는등의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본정치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들은 총리공선제 채택보다는 자민당1당지배 붕괴후 합종연횡(合縱連衡)을 거듭하고 있는정당제를 정비,강력한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한다.현 내각제에서도 각료임면권을 활 용,힘있는 총리직을 수행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고,무라야마 총리가 사실은 예외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개헌문제가 역사적 과제해결에 도움을 주기 보다는 지도자끼리의 이해맞추기 대상이었던 적이 더 많았던게 사실이다.
때문에 개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행헌법의 기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은 한일양국에 모두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日本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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