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협상 명심보감’ ② ‘좋은 게 좋다’식 모호한 계약 피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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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흔히 쓰는 중국어 중에 ‘모렁량커(模稜兩可)’라는 말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니고 명확한 시비(是非)의 구별이 없다는 뜻이다. 신주식(전 CJ부사장·중국사업 총괄·사진) 대구가톨릭대학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중국 비즈니스는 ‘모렁량커’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인들은 협상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매듭짓고, 계약서 역시 모호하게 표현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협상술에 말려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중국 수입상과 좋은 분위기에서 협상을 끝내고 계약서를 쓰게 됐습니다. 상대방이 수입품 품질조건에 대해 ‘견본과 동일한 것’이라는 문구만 넣자고 제의하더군요. 까다로운 조건이 아니기에 ‘좋다’고 했지요. 그러나 중국 내에서 해당 제품 가격이 떨어지자 수입상은 태도를 돌변해 품질이 샘플과 맞지 않는다는 억지 주장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인수를 거부해 수출 제품은 결국 항구에서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삼성물산과 CJ 재직 기간(1974~2002년) 중 16년을 중국과 대만에서 근무한 신 교수의 경험담이다.

그는 “서로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나 단어를 절대 계약서에 넣어서는 안 된다”며 “일부 악덕 중국 상인은 고의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써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협상 때 ‘하이커이(還可以·그 정도면 됐다)’나 ‘차부둬(差不多·차이가 크지 않다)’, ‘부춰(不錯·틀리지 않다)’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 외국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협상이 잘돼 가는구나’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다. 신 교수는 “정말 사고 싶은 물건이라면 중국인들은 가격을 깎기 위해 트집부터 잡는다”며 “제품에 대해 칭찬을 하면 오히려 협상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그들의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중국인들은 큰 틀에서의 합의를 좋아한다. ‘추퉁춘이(求同存異·큰 틀의 합의를 모색하되 작은 이견은 뒤로 미룸)’식 협상 전략이다. 이 전략에 말려들면 구체적인 조항에 대한 합의 없이 사업을 진행하다 끝내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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