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마라톤 명승부같은 佛 大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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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흔히 선거전은 마라톤에 비유된다.
초반에 잘 뛴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며,막판 스퍼트도 중요하다.뜻하지 않은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7일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의 승리로 막을 내린 프랑스대선(大選)은 한판의 멋진 마라톤 시합이었다.「불도저」란 별명을 갖고 있는 시라크 당선자는 이번 승부를 통해 「마라토너」란별명 하나를 더 갖게 됐다.
지난해 11월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그의 페이스는 답답했고,전도는 암담했다.자신의 「30년 지기(知己)」라 믿었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에게 밀려 선두를 빼앗겼다.그것도 도저히 따라붙기 어렵다고 여겨질 정도의 큰 차이였다.여기 에 리오넬 조스팽이라는 뜻밖의 주자가 다크호스로 등장했다.예상 밖의 선전으로 조스팽마저 시라크를 앞질러 갔다.사회당의 어부지리(漁父之利)를 걱정한 우파 쪽에서는 그의 용퇴(勇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대권삼수(大權三修)의 한 (恨)이 한으로 그칠 것이 거의 확실해지면서 측근들도 하나둘 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초반에 너무 힘을 뺀 발라뒤르는 1차전에서 3위를 기록,탈락했다.조스팽과 맞붙은 시라크의 막판 스퍼트는 볼만한 것이었다.결국그는 아슬아슬한 차이지만 조스팽을 따돌리고 선두 로 결승점에 골인,마라톤의 대미(大尾)를 장식했다.한명의 마라토너가 그냥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시라크는 파리정치대학 재학 시절 미국행 화물선에서 일을 도와주며 대서양을 건넜다.하버드대학 서머스쿨에 다니면서 하워드 존슨스 체인호텔에서 소다수를 따라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텍사스 석유재벌 미망인의 운전사 노릇도 했다.한때 공산주 의에 기울기도 했고,알제리 독립전쟁 때는 자원 입대하기도 했다.68년 5월 학생사태 때는 30대 장관으로 공산당계열 노조지도자들과 파리 암흑가에서 단신으로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불도저란 별명은 그때 붙었다.색깔이 다른 대통령 밑에서 총리로 있으며 수모를 겪기도 했고,믿었던 측근들이 등을 돌리는 배신감을 맛보기도 했다. 한명의 완성된 마라토너가 펼치는 승부,그래서 그것은 항상감동적이다.다음달 있을 우리 지방선거에서 완성된 마라토너들이 벌이는 감동적 승부를 기대해 본다.
裵 明 福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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