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한국현대사><스티코프비망록>日誌발굴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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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역사연구에서 1차자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과거의 제반상황을 규정할 수 있는 확실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우리의 경우 전쟁을 겪고 분단이 장기화된 상태에서 상당수의 자료가 유출되거나 망실되었기 때문에 공백으로 남아 있거나 추상적으로만 서술되고 있는 현대사의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中央日報가 최근 발굴한 『스티코프비망록』은 현대사연구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일지형식으로 된 『비망록』에는 당시 남북한 상황과 정치지도자들의 활동,그리고 소련과의 연락사항등이 광범위하게 망라돼 있다.
이러한 내용이 中央日報에 의해 빛을 보게됨으로써 종래 가려졌던많은 부분이 드러나게 되었고,이로인해 현대사의 상당부분은 재구성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헌영을 비롯한 남한 좌익진영의 지도자들은 3당합당을 위시해구체적인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경쟁적으로 평양을 방문,지시와 자문을 구했으며 소련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북한의 제반 정치행위가 소련군의 지시에 의한 것이거나,사전에 승인을 받아 이루어짐으로써 자율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어려운 상태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이러한 사실이 스티코프에의해 직접 밝혀짐으로써 당시 이들에 대한 우익 진영의 비판이 상대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1946년 8월초부터 남한에서는 공산당.인민당.신민당 3당의합당이 추진되었는데,이는 북로당의 출범을 계기로 3당이 합법적단일 대중정당으로의 전환을 목적한 것이었다.합당문제에 대해 각당 대표와 중앙위원 대부분은 이를 지지했다.그 러나 합당방법과주도권문제를 둘러싸고 각당은 심한 내부분열을 나타냈다.
합당을 놓고 각당은 2개의 흐름으로 분열돼 결국 3당이 6개파벌로 나뉘고 말았다.이중 공산당의 간부파와 인민당의 47인파.신민당의 중앙파가 합동해 남로당을,공산당의 대회파와 인민당의31파.신민당의 반중앙파(反中央派)가 합쳐 사 로당 결성을 추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양파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북한을 방문,소련군의 지시를 받으려 했다.
여기서 소련군이 남로당편을 듦으로써 남로당은 좌익진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됐다.이를 계기로 사로당은 해체되는 운명을 겪게 되며,이에 참여했던 여운형.백남운등은 자기비판을 하고 정치일선에서 당분간 물러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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