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제단의 무책임한 폭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어제 ‘삼성 떡값 수수자 명단’을 추가로 공개했다. 지난해 11월 전·현직 검찰 고위직 인사 3명의 실명을 발표한 지 100여 일 만이다. 사제단은 “삼성과 유착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새 정부의 핵심과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이 되고 국가 금융기관의 책임을 맡게 될 상황이 닥쳐 추가로 명단을 발표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당사자들과 삼성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사제단의 이러한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명단이 있으면 처음부터 모두 공개하면 될 일이지 찔끔찔끔 흘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특히 명단을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하면서 추가 공개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은 무슨 뜻인가. 명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의’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사제단은 지난해 신임 검찰총장 취임을 며칠 앞두고 명단을 공개했다. 이번에도 검찰 수뇌부 인사를 앞둔 상황에서 이름을 발표했다. 그리고 서울지검장이나 대검 중수부장에 삼성과 관련 없는 사람이 임명됐으면 한다는 주문까지 내놓았다. 검찰 인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고 해당자가 주요 보직에 임명되면 다시 의혹을 제기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제 공직 임명은 사제단의 검증을 받아야 할 처지다. 이 나라가 이런 식의 폭로를 하는 김모 변호사의 입에 끌려가야 하는가.

더 이상 이런 식의 폭로에 나라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증거없는 폭로는 더 이상 거론조차 말아야 한다. 사제단은 증거는 없이 ‘평소 삼성의 관리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금품을 받아 왔고, 삼성을 방문해 휴가비를 받아갔다’는 식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이자 변호사인 김씨도 문제다. 법조인이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상자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에 대한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제단과 김 변호사가 떳떳하려면 전체 명단과 확보 중인 증거 모두를 즉각 공개하라. 더 이상 이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가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