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29.꽃모종에 인생건 李訓圭 이온종묘社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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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훈규(李訓圭.1957년생)씨는 첨단 생명공학기술 가운데 하나인 조직배양으로 꽃모종을 길러 그것을 화훼(花卉)재배 농가에공급하는 젊은 농부 사장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내가『꽃모종 기르느라고 장가도 아직 못든 설흔 아홉살 난 노총각이라고 제목을 달까요?』하고 물었더니『총각까지는 좋습니다만 노총각이라고 불리는 건 아직은 좀 그렇습니다』하고 그는 늑장을 피운다.「이온 종묘」라는 상호 를 가진 그의 꽃모종 조직배양 회사는 직원 20명의 소기업이다.
그는 충남 보령에서 나서 자랐고 서울대 농대 농학과를 졸업했다.왜 농과대학을 택하였느냐고 물으니 자기 외모가 천생 농사꾼같이 생겨서 고교시절 자신도 그랬지만 학교 선생님들도 자신의 대학 진학은 당연히 농과대학이라고 정해져 있었다 고 한다.그는「운명이란 것은 유전자의 배열 그 자체다」라는 말 뿐만 아니라운명은 얼굴에 나타난다고까지 믿었던 사람인가 보다.그에게서 듣는다. 『82년에 막상 농대를 졸업하긴 했는데,무.배추 씨앗을어떻게 뿌리는지도 몰랐어요.참외씨와 오이씨를 구별할 줄도 몰랐고요.창피하고 딱했습니다.제가 농사 짓는 집안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쭉 농촌에서 자랐는데도 말입니다.농대 다닐 때 에는 농악패 두레에도 가입해 있었고 농촌운동에 관심이 커서 이념서클에도 참가했습니다.운동권 선배 말로는 졸업하고 농촌에 뛰어들어 농사 지으면서 농촌운동 하려면 손에 그때 돈으로 3천만원은 쥐고 있어야 한다더군요.기술이 없으니 배우느 라고 3년동안 까먹을 밑천으로 그만큼은 가져야 된다는 것이었어요.』 이훈규씨에게그만한 돈은 없었다.그래서 우선 채소 종묘(種苗)회사에 기술자로 취직했다.실은 돈보다 그에게 더 없었던 것은 농사 짓는 기술이었다.기술이 있어서 기술자가 아니라 그때부터 기술을 배운다는 뜻에서 기술자였는지도 모른다.■ 는 그 회사를 5년반만에 그만두고 농대 선배의 비닐하우스를 세내어 87년 가을에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시작했다.그의 말은 계속된다.
『그때까지 제가 벌어 모아 놓았던 전재산 1천3백만원을 전부넣고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첫해 결산을 해보니 15만원이 이익으로 남았습니다.참 무지무지 열심히 뛰었습니다.지금은 연간 매출액이 한 4억원 돼요.우리 꽃농사꾼(고객)들이 도와 주어서 여태까지는 잘 해 왔어요.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숙근초(宿根草)조직배양입니다.일종의 육묘(育苗)사업이지요.안개꽃과 거베라를 주로 기르고 장미도 좀 합니다.조직배양은 종자(씨)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생산비는 높지만 품질이 균질하고 병해에 안전합니다.씨를 받는 대신에 식물의생장점(크기는 0.3㎜정도)을 따서 시험관에서 길러내는 방법입니다.옛날에는 영양 번식이라면 삽목이나 접목방식만을 일컬었지요.조직배양을 하면 생장점 하나를 가지고 苗를 약 3천개쯤 만들수 있습니다.
조직배양에 약 8개월이 걸리고 여기서 나온 묘를 또 두어달 비닐하우스 안에서 더 키웁니다.그러니까 10개월이 걸려야 모종한 포기가 생산되어 재배농가한테 출하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꽃을 만들어 내는 화훼육종사업은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시장은 작은데 비해 투자비용은 너무 높기때문입니다.그러나 앞으로는 외국 종자를 무상으로 기르기는 어렵게 될 것입니다.외국 업자들이 지적 재산권을 요 구하고 나서고있습니다.저는 시험기 안에서 염색체를 돌연변이 시키는 방법을 통해 새 꽃을 한 둘씩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최근 연분홍 거베라를 하나 개발했는데「연홍」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그가 운동권 출신이라는 데에 나는 관심이 갔다.그가 농촌운동 대학생으로서 가졌던 초발심(初發心)의 지금 주소는 어딘지,어떻게 되어있는지 물었다.그의 대답을 들어보자.
『학생때 생각하던 농민운동이란 건 사회적인 운동이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자는 것이 전부였지요.그때는 농민의 수익 같은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농사꾼에게 기술적인 도움을 주고 수익을 향상시킬 방법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농민이 따라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튼튼하고 품질 좋은 꽃을 많이 맺는 묘를 키워 공급하고,재배 기술을 개발하여 보급하고,이런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그래서 저희가 기술 정보지를 내고 있어요.계간으로 내고 있는데 제호는「꽃바람」이고요.
물론 힘이 없는 것이 농민이니까 스스로의 주장을 펴고 권익을옹호하기 위한 농민이권단체는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꽃 농사가 지금은 어떠하며 장래는 어떻게 보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는 대답한다.
『꽃 가격은 7년 전보다 지금이 더 떨어져 있습니다.생산비는엄청나게 올라갔는데도 말입니다.정부가 화환 같은 것을 사치라고규제하는 바람에 꽃 수요가 줄어 들었어요.사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는 꽃 문화라면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던 것 아닙니까.우리는주위에 남는 땅이 있으면 거기에다 격식 있게 갖가지 꽃을 심고기르고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우리 나라 사람은 꽃을 물질적이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꽃은 잔치.개업식.장례식에서는 그 의 식을 사람들의 눈에 띄게하는 표시입니다.그런 자리에서 꽃은 기쁨의 나눔이나 슬픔에 대한 위로가 되고 사람 사는 아름다움이 됩니다.꽃을 심고 가꾸는 것이쌀 농사로는 전혀 생계를 꾸릴 수 없게 된 지금은 농사 가운데큰 몫을 차지해야 합니다.꽃 농사는 화훼 농민의 생업인 동시에나라를 위해서는 환경 산업이기도 합니다.그리고 이웃집 행사에 꽃을 갖다주는 것이 돈을 갖다주는 것보다는 소비도 덜할 것입니다.이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꽃을 과소비로 몰아붙인다는 것은 꽃이라는 맑고 연약한 아름다움에 전혀 어울릴 수 없는,좀 잔인한 짓 같지 않습니까.정부가 꽃을 과소비라고 매도하니까 안그래도 너무나 어려운 우리 농민과 농업은 또 한번 갈 길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훈규씨는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는 달변가는결코 아니다.그의 떠듬거리는 충청도 사투리로 발성된 말을 글로옮겨놓고 나서 놀란 사람은 나다.녹음기에서 받아 적어놓고 보니한 성숙한 현실 농민운동가의 매우 정열적인 웅변 문장이 된 것이다.한국 농업 전반에 관한 그의 의견을 물은데 대하여 대답은다음과 같다.
『첫째는 환경보존 차원에서 쌀 농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지금 벼농사는 한 마지기를 지어 순이익은 10만원도 낼 수없습니다.이러니까 농촌 인구는 앞으로도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요.쌀 농사가 없어지게 되면 식량안보 문제보 다 환경 생태계의 급속한 파괴가 먼저 닥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있지 않습니까.논이 물을 담고 있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심한경우 국토가 사막화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이런차원에서 쌀 농사는 환경 농업이 라고 여겨서 국민이 다 함께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 같은 산업화 농업은 지금처럼추진하면 될 것 같아요.농사꾼이 살려면 소비가 따라줘야 합니다.한의학자 인산 선생 같은 분은「인산 신약」이라는 책에 우리 나라 토종 한약의 효능을 극구 칭찬하고 있지 않 습니까.황토 흙에 열무를 심어 먹으면 그런 보약이 없다고도 했고요.당분간은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나라 사람은 좀 비싸도 결국 우리 농산물을 먹게 될거라고 봅니다.채소.꽃.한약재는 수출산업으로도 육성할 수 있겠고요.
***쌀농사 보호해야 가장 큰 문제는 농고(農高)들어오는 애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전망이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농업 교육자나 저희같은 농업 일선의 선배들이 현실성 있는 희망을그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그런데 희망을 말하기에는 너무나높은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땅값이 너무 비싸서 땅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농사꾼이 되더라도 자기 땅이라고는 일생한 평도 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이자라도 싸다면 돈을 빌려서라도 살 수 있겠습니다마는….』 이훈규사장은 올해부터 새로운사업을 하나 더 시작했다.「상현육묘조합법인」이라는 유리온실 채소류 육묘장이 그것이다.그는 이 법인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이시설에서는 어떤 모종도 다 기를 수 있다.씨뿌리는 것,물과 비료 주는 것,실내 온도 맞추는 것……모든 것이 자동식이다.1천5백평 넓이의 이 유리온실을 짓는데 7억7천5백만원이 들었다.
땅은 한 동료조합원의 소유고 시설비의 50%는 정부가 무상 보조했다.지금 이 온실 안에는 채소재배 농가에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각 종 채소 모종이 보는 이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며 자라고있다. 이런 이훈규씨지만 아직 자기 땅은 한 평도 갖지 못하고있다.이런 성공적인 초첨단 농사꾼마저 농사 지어서는 자기 농지(農地)를 살 수 있을만큼 돈을 모을 수 없게 된 나라라면 자라나는 차세대 농업 지망생에게 희망을 주기는 영 글렀 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이훈규씨 자신은 자기가 아직은 노총각이라는 것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땅 한 평 없는 농군임을 한탄하려 들지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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