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로봇 애완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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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개가 인간과 함께한 역사는 짧지 않다. 1만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북부의 유적지에서는 반쯤 웅크린 자세로 왼손을 4~5개월 된 강아지의 머리뼈 위에 올려놓은 노인의 유골이 발견됐다. 세계 곳곳의 7000년 전 인류 유적지에서는 개의 유골이 대량으로 나온다.

지구상에 있는 4000여 종의 포유류와 1만여 종의 새 가운데 인간이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그중 가장 성공한 것이 개다. 가축을 몰고 사냥감을 찾아내며, 썰매를 끌고 조난자를 수색하고 집을 지킨다. 오늘날에는 애완동물로서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변함없는 충성과 사랑을 바치기 때문이다.

개에게 로봇이라는 뜻밖의 도전자가 출현했다. 따뜻한 체온의 진짜 개나 금속제 꼬리를 흔드는 로봇 개나 노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효과는 비슷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 연구진이 미국 의약업 이사협회 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스파키’란 이름의 잡종 개와 일본 소니사가 제작한 인공지능 애완견 로봇 ‘아이보’를 양로원 세 곳의 입주자 38명과 8주간 놀게 한 결과다. 노인들은 아이보와 친해지는 데 스파키의 경우보다 1주일 더 걸렸지만 역시 쓰다듬고 말을 걸게 되었다. 설문조사 결과 외로움이 줄고 애착심이 늘어난 정도가 똑같았다고 한다.

아이보는 실제 개의 행동을 정밀하게 구현한 최초의 로봇 애완견이다. 1999년 소니사에서 대당 2000달러에 출시한 이후 11만 대가 팔렸다. 2006년 단종됐지만 얼굴 인식 기능 등을 탑재한 신형이 출시될 예정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인공지능이 이대로 발전하면 개에 조금도 못지 않은 행동을 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돈만 있으면 언제든 새로 구할 수 있다면 친구나 가족은 아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의 특징은 한번 잃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아니던가. 20세기 최고의 극작가 유진 오닐이 쓴 『아주 특별한 개의 마지막 유언』(반디)은 이를 웅변한다. 오닐은 애완견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던 아픔을 개의 가상 유언에 담았다. “저에게는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을 빼고는 유산으로 남길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언제든 제 무덤을 찾아오실 땐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여기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가 사랑했던 친구가 묻혔노라’고. 저는 아무리 깊이 잠들었다 할지라도 언제나 당신께 귀 기울이고 있을 것입니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