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컴퓨터와 中年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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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거 별거 아냐』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쉬운 법이지만 지난달 美남부 애틀랜타市에서열린 세계최대의 컴퓨터쇼 「컴덱스(COMDEX)」를 둘러본 느낌은 보기전의 기대에 비춰보면 기대이하였다.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시회장의 규모가 크다는 것과 다수의 한국인을 포함,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관람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서울 강남의 무역전시장(KOEX)에서 때때로 개최되는 컴퓨터전시회와 크게 다를바 없었다.
우선 국내에서는 구경할 수 없을만큼 눈이 번쩍 뜨이는 제품과신기술이 없었다.
「컴퓨터 천재」 빌 게이츠의 기조연설을 들을 때는 그보다 10년이나 젊은 한국의 이찬진(李燦振.한글과 컴퓨터社사장)이 떠올랐다. 이 세계 최대 컴퓨터쇼가 정작 우리와 다른 것은 제품그 자체가 아니라 관람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한국의 컴퓨터전시회는 관련업체사람들과 중.고등학생들의 잔치로 끝나기 일쑤인데 반해 컴덱스에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컴퓨터를 직접 일(J ob)에 사용하는 중년 남성들이 주된 관람객이었다.
이들은 각 부스를 찾아 다니며 자신에게 가장 요긴한 제품들을살펴보고 실습장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1시간여를 기다려 인터네트를 배우고 돌아간 사람들은 모두가 배가 불룩 나온 기성세대였다. 전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많은 장애인들의 모습도 신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컴퓨터시대라는 말이 이미 충분히 구태의연해진 느낌이지만 컴덱스에 몰려든 미국의 중년들은 여전히 이 말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미국인 소프트웨어업체 사장(37)은『컴퓨터문화보급의 걸림돌은 이제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라고말한다. 우리는 단지 컴퓨터문화에 익숙한 지금의 청소년들이 성장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그들이 사회에 뛰어들때 쯤이면온 세계의 기성세대들이 저마다 튼튼한 유형무형의 정보인프라를 구축,소중한 경험을 축적해놓은 뒤가 될 것이다.
미국 부통령이 인터네트로 청소년들과 대화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얘기다.한국의 중년층은 컴퓨터라는 또 하나의 봇짐을 앞장서짊어져야만 할 것 같다.
金政郁〈뉴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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