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총선과 이미지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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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검은돈'이 창당자금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을 발견하자마자 '당사 퇴거'를 지시했다. "공터에 천막을 쳐도 좋다"고 하면서 이사갈 곳을 빨리 물색하라고 했다. 시청자의 정서를 읽을 줄 아는 방송인 출신답게 鄭의장은 탁월한 순발력을 발휘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위기관리에 돌입한 것이다. 부패세력과 단절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뉴스이벤트를 창출함으로써 '클린' 정당의 이미지를 더욱 극적으로 부각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미지 전략은 어떠한가? 높은 인지도와 호의적인 이미지를 지닌 인물을 영입하려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당 전체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능력 차원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의 이미지를 벗어던질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당내 분열로 리더십 공백상태에 빠져 있다. 한나라당의 이미지 변신에 희망을 걸었다가 절망만 안고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을 방치해 두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탄핵정국을 이끌어내 '반盧' 이미지를 확산시켜 보려 하고 있으나 탄핵 발의의 정당성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탄핵정국으로 간다면 두 야당의 공조체제와 싸워야 할 열린우리당은 약자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히면서 선거를 강자와 약자의 대결구도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약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결집해 선거 캠페인에 동원할 수 있으니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손해볼 것이 없다는 계산이 나왔음 직하다.

선거에서 이미지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지에는 거품과 역풍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거품이 빠지는 순간 역풍이 휘몰아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 전쟁을 하면서 호전적 이미지를 부각해 한때 재미를 하지만 전후처리 정책의 실패로 여론이 반전되면서 지금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깨끗하고 순박하다는 이미지를 앞세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盧대통령도 불법 자금과 측근 비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리고 실업문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盧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6대 국회에 진출한 언론인 출신 의원들의 의정활동 평균점수가 전체 평균보다 낮다는 조사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론인 출신들은 미디어가 만들어 준 이미지와 인지도로 쉽게 당선됐지만 정치인으로서의 활동과 업적 면에서는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라고 하겠다. 당선 가능성이 큰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의정활동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유권자들은 거품도 없고 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이미지를 가진 '큰' 정치인의 리더십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홍보전문가들이 단기간에 급조한 이미지가 아니라 개인의 업적이나 그가 추진한 정책의 성과에 기초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미지를 보고 싶어한다. 그것은 난방이 잘된 실내에서도 노란 점퍼를 벗지 않은 채 회의를 진행하는 어느 정당 간부들이 전달하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TV 카메라만 비추면 갑자기 변해 목청을 높이는 의원들의 구태의연한 모습도 아니다. TV 출연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이용하려는 정치신인들의 얄팍한 홍보전략과도 다른 것이다.

정당의 이미지가 정책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정국을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열린우리당이 간판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면 盧대통령은 선거법 위반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정당지지 발언의 효과를 거뒀을 것이다. 정당의 명칭을 언급하지 않았으니 선거중립 의무준수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 대통령도 정책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주장에 어느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윤영철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