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베데프 위주로 편파 선거방송 선관위원장도 “불공정”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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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복도에 마련된 투표장 벽면엔 여당 후보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를 비롯한 대권 후보 4명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연금 생활자 예카테리나 콜슈나(67·여)는 “메드베데프에게 투표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함께 나라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일으키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에두아르트 밀로쿠모프(37)는 “젊고 능력 있는 후보인 메드베데프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유럽 스타일이라 서방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날 투표는 11시간대에 걸쳐 있는 러시아 영토의 동쪽 끝인 캄차카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 1만2000㎞ 떨어진 서부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까지 순차적으로 실시됐다. 투표는 지역별 시간대로 오전 8시~오후 8시 12시간 동안 진행됐다. 치안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모스크바에만 2만4000명을 비롯해 전국에 45만 명의 경찰과 보안 요원들을 투표소와 그 주변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푸틴이 후계자로 지명한 메드베데프의 압승을 노리는 정부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극지 마을까지 투표함을 가져 가는 등 행정력을 총동원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고 있는 러시아인 우주인 유리 말렌첸코도 지상에 있는 대리인과의 특별 교신을 통해 한 표를 행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TV연설을 통해 “유권자들의 모든 목소리가 중요하다. 러시아의 미래를 위해 투표에 참여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그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되면 총리를 맡아 함께 국정을 이끌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왔다.

그러나 공정치 못한 선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국제투명성기구와 러시아 선거감독기구 ‘골로스(목소리)’는 크렘린이 언론통제, 지방 지도자들에 대한 압력, 행정력 동원 등을 통해 조작된 선거를 치렀다고 비난했다. 25명의 감시단을 파견한 유럽의회도 “선거가 공정하다고 간주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이런 서방의 비난이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추로프 선관위원장은 “언론들이 모든 후보를 동등하게 다루지 않았다”며 선거 운동 기간에 나타난 불공정성을 일부 인정했다. 메드베데프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많은 방송 시간이 할애됐다는 지적이었다.

러시아는 푸틴 통치 8년(2000~2008년) 동안 고유가로 쏟아져 들어온 오일 달러 덕에 7%대의 고도 성장을 계속해 왔다. 풍부한 천연자원을 무기로 서방을 압박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군비를 강화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반크렘린 인사들과 서방은 러시아 정부가 야당 인사와 언론을 탄압하고,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캅카스 지역 소수 민족에 대한 인권 유린을 일삼는 등 전제주의적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푸틴과 측근들이 특권을 이용해 개인 축재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크렘린의 새 주인으로 유력한 메드베데프가 국내외적으로 어떤 정책을 펼지 주목되고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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